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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칼럼] 아키타의 교육기적과 대선공약
오피니언 문용린 칼럼

[문용린 칼럼] 아키타의 교육기적과 대선공약

세계 어디를 가나 교육은 언제나 최고의 민생문제다. 유럽의 여러 잘 사는 나라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교육이다. 교육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20여 년 전부터 교육문제로 항상 시끄럽다. 아시아 쪽으로 오면 교육은 가히 전쟁과 같다.

특히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공통적인 교육문제로 국가 전체가 힘든 싸움을 치르고 있다. 공통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좋은 명문 학교에 대한 과열된 입학 경쟁이다.

1945년 이래 지금까지 거의 70년 가까이 이와 같은 입시중심교육이 동아시아 지역에 고착되면서, 거의 유사한 형태의 문제점을 누적해 오기 시작했다. 즉, 네 종류의 다양한 양극화 현상이 그것이다. 첫째 부 양극화로 부잣집 자녀들의 명문대 독점, 둘째 도농 양극화로 도시출신 학생의 명문대 독점, 셋째 학교 양극화로 소수 우수 고등학교의 명문대 독점, 넷째 학생 양극화로 소수의 우수학생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엘리트로 분류돼 집중교육을 받아 결국 명문대를 독점하는 등의 네 가지 양극화가 이들 나라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내포하면서 곪아 왔다. 이런 양극화의 모습은 결국 교육이 권력과 부의 대물림을 보장하고 조장하는 수단이자 도구로 기능해온 측면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로 인한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한 빈부 계층 간의 긴장감,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교육수혜에 대한 박탈감, 우수학생의 소수 학교 독점으로 인한 대다수 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무력감, 엘리트로 분류되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의 열등감과 좌절감은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교육적 위기다.

이 위기에 희망의 무지개를 드리워 준 기적이 일본의 아키타 현(縣)에서 일어난다. 2007년 일본에서는 전국의 학력평가를 목적으로 43년 만에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그 결과 놀랄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평균소득이나 취업률이 일본 최하위인 그 지역의 학교들이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사람들은 착오이거나 1회적인 것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에도 다시 전국 1위를 기록하자 교육계가 온통 놀라움에 빠지게 되고, 드디어 아카타 현의 교육방식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 이들 학교들에는 무슨 특이한 비법이 있었던가? 아키타의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거나, 별도의 과외수업을 받지 않았다. 특별한 교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적을 올리기 위한 별도의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일들 즉, 복습하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부모와 함께 아침 밥 먹기, 노트 필기하기 등 가장 기초적인 생활습관이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사, 학부모, 학교, 지역사회가 협동해서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게 만들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교육적 열정을 가진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몰입한 덕분이다. 그들의 열정이 동료교사와 교육 행정가를 감동시켰고,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감동시켰으며,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아키타의 기적은 이제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왜? 우리나라 아주 시골의 작은 학교인 삼동초등학교에서 이 기적이 EBS의 의도적 노력으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아키타의 기적은 동아시아의 교육문제를 혁명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금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교육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현란한 미사여구와 실속없는 공약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한국판 아키타 교육기적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희망의 푯대를 세워 주길 바란다.

문용린 서울대교수·前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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