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진화생물학자가 말하는 '미의 기원'

송고시간2012-05-24 10:2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적응'이 중요하나 더 중요한 건 '자유'"

진화생물학자가 말하는 '미의 기원'
"'적응'이 중요하나 더 중요한 건 '자유'"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다윈의 진화론은 신학적 창조론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진화론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내지는 못했다. 진화론이 더 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다윈은 공작의 아름다운 꽁지깃을 보고선 의아해했다. 생존에 불필요한 조직이 이토록 진화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이었다. 암컷이 수컷의 그런 특질을 좋아했고,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고자 그런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다윈의 이론이 갖는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그중 하나가 '핸디캡 이론'이란다. 남성들이 위험한 모험을 즐기듯이 수컷들은 자신의 수컷다움을 과시하려 스스로 위험을 짊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작의 꽁지깃처럼 생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핸디캡을 안고서도 살아남았다면 그 수컷은 능력과 건강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고 그래서 수컷의 핸디캡이 클수록 암컷의 선호도는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진화생물학자가 말하는 '미의 기원' - 2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요제프 H. 라이히홀프는 저서 '미의 기원'을 통해 이런 이론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핸드캡은 언뜻 단점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중요한 기능이 숨어 있다는 것.

공작은 자신을 잡아채려 하는 표범에게 꽁지깃만 떼어주고 나무 위로 도망친다. 일견 거추장스러운 듯하나 비실용적으로 보이는 신체 조직들은 겉보기와 달리 생존을 위한 그 나름의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아무튼 저자는 그렇게 보고 있다.

수컷의 화려함은 몸속에서 진행되는 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암컷은 알을 만들어내고 새끼를 키우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 부화와 양육 부담이 없는 수컷은 몸속에 에너지가 남아돈다.

하지만 에너지가 남아돌면 몸이 비대해져 생존경쟁에 불리해진다. 그래서 수컷들은 다른 전략을 써서 남아도는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 집단적으로 구애행위를 하고, 수컷끼리 치열하게 싸우고, 암컷의 선택을 받으려 쉼 없이 지저귀거나 위험한 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모된 에너지는 놀랍게도 암컷이 부화와 양육에 소모하는 에너지와 거의 일치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수컷이 새끼들의 양육에 동참하는 종은 수컷의 외모가 암컷처럼 수수하다는 것이다.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관점이라고 하겠다.

라이히홀프가 내놓은 견해 중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이런저런 환경조건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노력이다"는 것이다.

'적응' 못지않게 '자유'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생물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 부단히 애쓸 뿐 아니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시 끊임없이 노력한다. 진화론을 '적응'이라는 수동적 관점에서 '자유'라는 능동적 시각으로 진화시키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적응의 개념을 좀 더 신중히 다뤄야 하고, 우리가 보고 아는 것을 모두 적응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진화 과정의 원칙은 필연이라기보다 가능성이며, 강압이라기보다 자유라는 얘기다. 역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견해가 아닐 수 없다.

플래닛. 376쪽. 1만8천원.

ido@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