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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소설가의 고발 "6·25는 미국·일본이 공모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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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소설가의 고발 "6·25는 미국·일본이 공모한 범죄!"

[프레시안 books] 마쓰모토 세이초의 <일본의 검은 안개>

사담부터 시작하겠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1년에 몇 번씩 일본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니 정작 일본에 살 때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갈 수 없었던 일본의 구석구석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 사전에 그 지역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를 해두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데다, 안다 해도 적당한 책자가 반드시 내 손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정보 책자나 인터넷 정보는 정해진 길만을 알려주니 성에 안찬다. 그래서 그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책방을 찾게 된다. 짧은 시간이니 이것저것 다 읽을 수는 없다. 이럴 때 손쉽게 구하는 게 바로 추리 소설이다.

한국의 책방과 일본의 책방이 다른 점은 이것저것 많다. 한국의 책방에서 볼 수 있는 시집 코너를 일본의 책방에서는 찾기 힘들다는 것도 다른 점 중의 하나이다. 반대로 한국의 책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추리 소설 코너를 일본의 책방에서는 손쉽게 볼 수 있다. 살인 사건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일본에서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이 많은 건 매우 이례적이지만, 현실과 가상의 간극이 추리 소설 시장을 넓혀놓았을 수도 있다. 책방에 가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추리 소설이 나를 압도한다.

그 중에서 <○○○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추리 소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가사키에 갈 때는 <나가사키 살인 사건>, 야마구치에 갈 때는 <야마구치 살인 사건>, 가고시마에 갈 때는 <가고시마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추리 소설을 읽으면 된다. 일본 구석구석이 살인 사건의 무대이다. 신칸센을 타게 되면 <신칸센 살인 사건>을 읽으면 된다.

주로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太郎),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 우치다 야스오(内田康夫) 등을 읽는다. 내용도 추리도 아주 단순하다. 그러다보니 호텔방에 누워 두세 시간이면 읽는다. 이 단순함에 질리면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를 찾는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지명, 지역색, 역사에 대한 산문적 구성을 통해 그 지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는다. 그 이미지를 가볍게 머릿속에 담아두고 일정을 소화한다.

지명 등이 이미 머릿속에 담겨 있으니 어디를 가도 누구한테도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하기가 쉽다. 물론 이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나친 선입관은 오히려 관찰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염려는 없다. 왜냐하면 선입관을 심어줄 정도로 정교하고 강력한 내용이나 추리를 갖춘 소설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그저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과거로 가는 '여행'은 어떨까? 역사 여행을 돕는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당연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23~1996년)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 가장된 강한 내셔널리즘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연구 과제로는 삼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는 '역사 수정주의의 악종(惡種)'이라는 평도 듣는다.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즐겨 읽으면서도 가장 경계하는 작가이다. 그의 이런 단점이 역설적으로 그를 국민 작가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과거 여행'을 도왔던 작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 1909~1992년)이다. 1980년대 말에 부단히도 읽었다. 그는 일본의 다른 유명 작가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쇄소 식자공로 일하던 그가 작가로 등단한 것이 1951년이니 거의 불혹의 나이가 넘어서이다. '학력 콤플렉스'는 그를 평생 괴롭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의 배경을 이루기도 하였다. 다른 추리 소설 작가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서민들의 '세계'와 반(反)권력이 그의 작품의 주 무대가 된 것은 이런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가리켜 '사회파 추리 소설가', 혹은 '사회파 추리 작가'라 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는 추리 소설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회사상 사학자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松本清張の現実と虚構>(仲正昌樹 지음, ビジネス社 펴냄, 2006년)), 오히려 '추리파 사회 소설가' 혹은 '추리파 사회 작가'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는 사회 문제가 양념처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 그 자체가 주제이고 이 주제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추리적 기법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추리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특히 동시대의 사건을 다룰 때는 자료적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자료가 없기도 하지만 있다 해도 자료가 공개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당사자가 사망한 다음인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쓰모토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간극을, 즉 자료적 한계를 추리로 메워 나간다. 여기에서 추리란 사실과 사실을 잇는 논리적 회로를 따라가는 일이다.

대개의 경우, 사건이란 점(點)으로 존재한다. 다른 사건도 점으로 존재한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것이 근거이다. 근거는 대개 증거 문헌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 증거 문헌이 없다면, 혹은 발견되지 않는다면 점과 점은 이어질 수 없다. 특히 동시대의 사건일수록 점과 점의 인과관계를 이어주는 문헌 자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은 미궁에 빠진다. 안개(霧)에 휩싸인다.

마쓰모토는 한정된 자료를 가지고 안개를 뚫어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검은 실체에 다가간다. 이 때 동원되는 방법이 정황 증거이고 추리 기법이다. 그래서 마쓰모토에게 '추리'란 역사적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지 추리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런 그의 방법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주간지에 장기 연재된 <쇼와(昭和)사 발굴>(전13권)이다. 지금도 내 연구실 책꽂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일본 공산당 내에 잠입한 경찰 스파이 이야기를 다룬 '스파이 M의 모략'은 지금도 강렬하게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쇼와사 발굴>이 1945년 이전을 다룬 논픽션 형식의 추리 작품이라 한다면, 한국에 최근 번역 소개된 <일본의 검은 안개>(전2권, 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는 주로 1945년 이후에 일어난, 전후의 '안개'를 다룬다.

▲ <일본의 검은 안개>(상권,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모비딕 펴냄). ⓒ모비딕
'안개'는 모두 열두 개이다. 국철(지금의 JR) 총재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定則)의 의문의 죽음(1949년), 일본항공 소속 목성 호 의문의 추락 사건(1952년), 쇼와전공(昭和電工) 의혹(1948년)과 조선(造船) 의혹 사건(1954년), 경찰관 시라토리 가즈오의 의문의 사살 사건(1952년), 소련 스파이 라스트보로프의 미국 망명 사건(1954년), 일본 공산당 정치국원 이토 리쓰(伊藤律)의 스파이 의혹 사건(1950년 전후), 일본 은행 소장의 다이아몬드 미국 유출 음모(1950년 전후), 제국 은행(미쓰이 은행)에서 일어난 의문의 독살 사건(1948년), 미국의 첩보 기구 캐논이 소설가 가지 와타루(鹿地亘)를 납치 감금한 사건(1951~52년), 후쿠시마 현 마쓰카와에서 일어난 국철 기관차 탈선 전복 사건(1949년), 공산주의자 추방 사건(1950년) 그리고 한국 전쟁(1950년).

열두 개의 꼭지를 보면, 모두 일본이 미군의 점령 상태에 놓여 있었던 미군정기(1945~1952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개'를 만들어낸 검은 실체는 미국이다. 그는 안개를 뚫고 미국이라는 검은 실체에 다가간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반미 소설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반미'라는 목표를 세워두고 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모든 사실을 연역적으로 재구성했다고 비판한다. 번역본 하권에 실려 있는 마쓰모토의 '나는 왜 <일본의 검은 안개>를 썼는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연재물을 집필할 때 나는 처음부터 반미 의식을 가지고 임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점령군의 모략'이라는 잣대로 모든 사건을 분석한 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런 느낌을 주었다면 그것은 각각의 사건을 추적한 결과가 귀납적으로 그렇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357쪽)

사실 그가 반미적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이 작품을 쓴 것은 1960년이다. 미일 안보 조약 반대 운동이 일본을 뒤덮었을 때이다. 일본이 미군정에서 벗어난 지 겨우 8년이 지났을 뿐이다. 따라서 시대적 공기가 그를 반미로 내몰았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는 '미국 책임론'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해 있는가의 문제이다.

부분적으로 그의 '추리'가 틀렸다거나 사실에 어긋나 있다거나 혹은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을 수는 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이 책에서 미국의 스파이로 지목한 이토 리쓰는 옮긴이 김경남이 '역자 후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후에 미국의 스파이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마쓰모토의 '추리'는 명백한 오류이다.

하지만 마쓰모토가 1960년의 입장에서 그를 스파이로 '추리'한 것처럼, 이토 리쓰가 스파이가 아니라 오히려 공산당 최고 지도자였던 노사카 산조가 스파이였다는 사실도 역시 현재의 '추리'이다. 이 새로운 사실을 사실로 여전히 확정할 수 없고 여전히 '추리'일 수밖에 없는 것은 마쓰모토가 지적한 '안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합작'한 일본의 전후 사회, 즉 존 다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 시작된 미일 합작의 구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상, 마쓰모토가 지적한 의혹이 사실임을 혹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새로운 결정적인 자료가 공개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모든 역사는 '추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자 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와 문학자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의 마쓰모토에 대한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두 사람은 마쓰모토의 작품, 특히 <쇼와사 발굴>과 <일본의 검은 안개>에는 아카데미즘적인 전후 역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成田龍一·小森陽一, '松本清張と歴史への欲望', <現代思想>, 2005년 3월). 이 두 사람의 지적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당시 마르크스주의적 공식주의의 연역적인 역사관에 빠져있던 일본의 역사학계에 대한 비판으로 마쓰모토를 읽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즉,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존재하던 점(사건)과 점을 이어주는 선을 찾고 이를 통해 면으로 확장하는 마쓰모토의 방식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따라서 점과 점을 잇고 이를 면으로 확장하는 마쓰모토의 방법론은 동시에 실증주의 역사학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쓰모토는 말한다.

"역사가는 신용할 만한 자료, 즉 그들이 말하는 '일등 자료'를 수집해서 그것의 순서를 잡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역사를 '조립'한다. 이 때 자료가 적으면 당연히 객관적인 복원은 곤란하다. 남은 자료보다 잃어버린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개개의 자료를 기본으로 이 사라진 부분을 추리해 나가는 것이 역사가의 '역사 안목'일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이번 연재의 방법은 이러한 역사가의 방법을 답습한 셈이고, 또한 그런 의도로 써왔다. 그런데 신용할 만한 자료라 해도 그것이 전부 정확한 모습으로 쓰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용할 만한' 자료란, 때로는 필자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또는 발표된 서적이나 잡지가 신용할 만한 출판사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용 자료로서의 신용이다." (362~363쪽)

즉, 그에게 '추리'란 점과 점을 이어주는, 문헌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선을 통해 면으로 확장하는 논리적 회로이면서, 지배층에 의해 '독점'되고 '왜곡'된 문헌 자료를 뛰어넘어 역사적인 사실을 '서민'의 품으로 회수하는 '칼날'이고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한국 전쟁을 미 점령기에 일어난 모든 의혹이 '집약'되는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은 지금에 와서 보면 '지나친 추리=귀납법'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60년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마쓰모토가 일본의 미 군정기를 어떻게 호출하려 했는가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유효하다.

<일본의 검은 안개>는 발표 당시부터 여러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오오카 쇼헤이(大岡昇平, 1908~1988년)와의 논쟁은 유명하다. 오오카의 마쓰모토 비판은 매우 격렬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大岡昇平, '松本清張批判' 및 '推理小説論', <群像>, 1961년 9월호 및 12월호). 오오카는 마쓰모토의 "성격과 경력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불행한 것에 동정을 금할 수 없지만 그 불행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고 아주 위험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마쓰모토의 '비뚤어짐(ひがみ)'을 지적한다.

그리고 마쓰모토는 이 '비뚤어진' 심성 때문에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반항"으로 작품을 썼지만, "마쓰모토 씨의 소설에서는 반역자는 결국 조직이라는 악에 주먹을 들 뿐이다. 주먹은 이들 조직의 파괴로 향하는 것도 아니며, 눈에는 눈의 복수를 꾀하는 것은 아니다. 겨우 상대 얼굴에 진흙을 뿌릴 뿐이다. 항상 자기만족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마쓰모토의 추리는) 데이터에 근거해 타당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본의 검은 안개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이에 근거해 사실을 조합하는 식"이니 마쓰모토의 추리를 "정치의 진실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한다. 명문고 세이케이(成城) 고등학교, 교토제국대학 졸업에 신문 기자를 거쳐 재벌 기업에 근무했던 유명 작가 오오카의 생애에서 보면, 소학교 졸업, 인쇄소 식자공 출신에 뒤늦게 등단한 마쓰모토의 '인기'가 못마땅했던 것일까? '싸움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오오카의 마쓰모토 비판은 거의 '인신공격' 수준인 듯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하면 오오카의 '인신공격'은 마쓰모토의 '정체불명'의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의 작품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쇼와사 발굴>과 <일본의 검은 안개>는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논픽션에 가깝다. 다만 추리적 기법을 동원하고 있는 점이 다른 논픽션과 다를 뿐이다. 역사학자 나루세 오사무(成瀬治)가 마쓰모토에 대해 "문학도 아니고 보고나 평론도 아니다. 뭔가 그 중간에 자리한 듯한 정체불명"의 것이라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종의 형식 파괴인 셈이다. 이런 특징은 마쓰모토의 강점이면서 약점이기도 하였다. 그가 오오카 비판에 대한 반(反) 비판에서 "(직접 증거를 중시하는) 변호인의 입장과 소설가의 입장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실제 물적 증거가 없어도 빠진 부분의 증거를 설득력 있는 유추(類推)로 메우는 것이 소설가의 한 가지 일"(松本清張, '大岡昇平氏のロマンチックな裁断', <群像>, 1962년 1월)이라고 말한 것은 그때까지의 형식과는 다른 그의 문학관을 보여준다.

어찌되었든 그는 이 작품 등으로 1960년 고액 납세자 작가 부분 1위에 올랐다. 이후 열세 번이나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얼마나 유명한 작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검은 안개'는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마쓰모토 세이초 연구>라는 잡지가 지금도 간행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본 현대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한국의 독자들은 그의 복잡한 '추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권하는 것은 그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가 1960년에 미군정을 어떻게 읽고 싶어 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검은 안개'의 연속선 위에 지금의 일본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면, 그가 제기한 '안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문제인 것은 그 '안개'의 정체가 '패배를 껴안고' 만들어진 미일 합작의 구조라는 사실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마쓰모토는 일본의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1944년부터 서울 용산과 전라북도 정읍에서 군 생활을 했고 패전을 정읍에서 맞이했다. 조선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침묵한다. 아니면 모놀로그 형식의 회상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마쓰모토는 한반도와 관련된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다. 따라서 그의 한반도 생활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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