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서방의 ‘이기적 원조’가 아프리카를 빈곤의 수렁에 빠뜨렸다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위한경제연구소장

▲죽은 원조
담비사 모요 지음·김진경 옮김 | 알마 | 255쪽 | 1만5000원

‘죽은 원조’(Dead Aid)라니, 책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출판사에서 섹시하게 ‘아프리카 경제학자’라는 수식을 달아놓은 저자 담비사 모요의 결론은 더 도발적이다. 그는 선진국들의 아프리카 원조는 아프리카에 해롭고, 원조가 빈곤의 수렁에 빠진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빌 이스털리 뉴욕대 교수는 이 책 저자의 모국인 잠비아가 1960년대부터 받은 모든 원조를 투자로 전환하고 그 투자가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가정하고 분석했다. 그랬더니 잠비아의 1인당 GDP는 1990년대 초반이면 약 2만달러에 달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잠비아의 1인당 GDP는 500달러 미만으로 1960년대보다 낮다. 아프리카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대륙에 대한 원조가 절정에 달한 1970~1998년을 거치면서 아프리카 빈곤율은 오히려 11%에서 66%로 치솟았다.

[책과 삶]서방의 ‘이기적 원조’가 아프리카를 빈곤의 수렁에 빠뜨렸다

지난 수십년간 아프리카에 1조달러가 넘는 원조가 제공됐지만, 아프리카인들은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는 전 세계 빈민의 절반이 몰려 있다. 아프리카는 평균수명이 60세 미만인 유일한 대륙이다. 스와질란드의 평균수명은 겨우 30세에 불과하다.

저개발을 설명하는 이유는 많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국가의 부와 번영이 지리학적 환경과 지형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막스 베버 전통을 추종하면 문화적 기준, 사회적 관습, 종교적 배경이 이유일 수 있다.

수다한 종족과 언어의 문제도 있다. 사하라 이남에만 약 1000개의 종족이 존재하며 각각은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지킨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인구 6000만명인 영국에 160여개 종족이 존재하는 셈이다. 국민경제를 형성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서구 열강이 인위적으로 결정한 국경 안에서 끊임없이 내전이 벌어진다. 또 공공인프라의 부족과 만연한 부패 등이 이유로 거론될 수 있다. 원조의 전달 및 집행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면 당연히 원조의 효율이 떨어진다.

“세계은행은 발전소를 짓기 위해 자금을 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창가에 자금을 대고 있는 것이다”는 말처럼 부패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가 저개발을 탈출하지 못할 결정적 이유를 갖는 건 아니다.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원조가 가장 첫손에 꼽히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한마디로 원조는 공여국을 위한 원조이지, 수원국을 위한 원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조 공여국은 대부분 자국이 제공하는 원조를 구속하는 경향을 보인다. 먼저 원조를 조달과 결부시킨다. 원조를 받는 국가는 공여국의 특정한 상품과 서비스, 또는 공여국이 선정한 기업에 원조금을 써야 한다. 고용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여국은 수원국에 적절한 인력이 있어도 자국 인력을 채용한다. 다음으로 공여국은 자국이 제공한 원조금이 사용될 분야나 프로젝트를 미리 선정할 권리를 행사한다. 또한 수원국이 일련의 경제·정치 정책에 동의할 때만 원조가 제공된다. 따라서 이런 원조는 아프리카나 아프리카인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뿐더러 역으로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과정에서 혜택을 보는 아프리카인은 독재자들과 그 수하들 뿐이다.

부패한 독재정권에 대한 원조가 냉전기에는 국제정치 논리상 어느 정도 용인됐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이 같은 원조 경향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무시하지 못할 게 ‘원조산업’의 자체 논리이다. 1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은행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유엔기구에다 최소 2만5000개인 비정부기구(NGO)·민간 자선단체 등 ‘원조산업’에 약 50만명이 종사한다. 아프리카의 발전이란 당초 목적은 잊혀지고 단체나 조직의 입지 약화를 방지하는 일이 원조에서 최우선 과제가 된다. 원조의 효과보다는 원조의 집행에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예컨대 아프리카에 모기장 제조업자가 있다고 치자. 열심히 모기장을 만들지만 당연히 영세한 탓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말라리아 모기를 퇴치하는 데 충분한 양의 모기장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때 아프리카 말라리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가 아프리카에 모기장 보내기 운동을 시작한다. 외제 모기장이 아프리카 시장으로 밀려들면서 아프리카인 제조업자는 사업을 접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문제는 수입 또는 무상제공된 모기장의 대다수가 5년 안에 찢어지고 망가지게 돼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이후에 발생한다. 아프리카 내부에 제조능력이 없으니 마르고 닳도록 원조가 제공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외화유입에 따른 환율하락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다른 부수적인 문제점까지 포함해 원조는 분명 죄악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외국인 직접투자, 공정한 무역 등 책의 후반부에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은 근본적인 처방으로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당장의 처방은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 원조를 아프리카 스스로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병행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조 공여국이나 수원국 모두 당장 원조를 중단시킬 계획이 없는 걸 감안하면 ‘원조의 선용’이 현실적인 타협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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