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삶을 갈망한 소녀, 죽음을 원한 또 한 소녀

한윤정 기자

▲ 충분히 아름다운 너에게…쉰네 순 뢰에스 글·손화수 옮김 | 시공사 | 240쪽 | 8500원

“비록 병에 걸려 아픈 신세지만 앞으로도 종교에 매달리진 않을 거야. 왠지 물에 빠진 사람이 실오라기에 생명을 의지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니? 난 그렇게 절망적으로 보이기는 싫단다. 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싶어.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아. 이불 속에 숨어서 양손을 맞잡고 건강을 되돌려 달라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아.”(요한네)

“우울증에 빠져 허덕이고 있지만, 나도 가끔은 기뻐할 때도 있어. 소리 내어 웃을 때도 있고, 지금도 웃고 있어. 나 자신을 비웃을 때도 있고, 자기들이 아주 잘난 줄 아는 사람들 때문에 웃을 때도 있어. 거만함과 악의를 동시에 담은 웃음이지. 넌 우리 엄마가 살아 있어서 내가 부럽다고 했지? 원한다면 우리 엄마를 공짜로 가지렴.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제니)

[책과 삶]삶을 갈망한 소녀, 죽음을 원한 또 한 소녀

열일곱 살 두 소녀의 편지로 이뤄진 서간체 소설. 요한네는 어린 딸을 둔 미혼모이자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간절하게 삶을 원하는 소녀이고, 제니는 우울증에 빠져 몇 번씩 자살을 기도하며 죽음을 원하는 소녀다. 어느 날 신문에 요한네의 인터뷰가 실리고, 그것을 본 제니가 요한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이 시작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바람은 극명히 다르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편지로 읽으면서 이해하고 공감한다.

요한네는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제니에게 위로받고, 제니는 요한네의 진지함과 의젓함을 보면서 자살충동을 이겨낸다. 요한네가 죽고 난 뒤에도 제니는 계속 요한네를 그리며 편지를 쓴다. 그리고 자신 앞에 펼쳐진 인생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만, 우울증이 재발해 결국 자살한다. 우리가 누리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요한네의 편지는 사색적이고 간결하며 고요한 문체에, 삶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방황하는 제니의 편지는 당차고 예민하며 감정적인 문체에 실린다. 특히 두 사람의 편지를 번갈아 배치하는 게 아니라 먼저 요한네의 편지를 읽고, 다음에 제니의 편지를 읽도록 함으로써 독자들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사연과 감정의 교류를 세심하게 되새겨보도록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통의 편지가 더 실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더는 만날 수 없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이 일단은 살아 보려고 노력했다는 게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곧 비바람에 지워질 줄 알면서도 가끔 흙 위에 나뭇가지로 글자를 씁니다. 제 어머니와 당신의 따님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열일곱 살이 된 요한네의 딸 요니네가 텔레비전에 나와 제니의 자살이 자기 탓인 것 같다고 자책하는 그녀의 어머니 베티나에게 보낸 편지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몰두했던 요한네와 제니를 넘어서, 요니네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라고 현재를 긍정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진다. 중학생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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