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최정옥 | 남산강학원 연구원

전시용 몸 만들기, 그 기이한 ‘육체잔혹사’

여름, 노출의 계절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묵은 살들과 한창 전쟁을 벌인다. 다이어트 돌입이다.

한 치수 작은 옷을 걸어두고, 그 옷에 몸이 맞는 날까지 살과의 한판 전쟁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 시기가 따로 없이 사시사철이 다이어트 시즌이다. 하의 실종을 연출하거나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으려면, 바비인형 같은 몸매를 뽐내려면 매일매일 이 전쟁 같은 다이어트에 매달려야 한다.

건강 때문에 꼭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의 다이어트 열풍을 보면 거의 강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은 뒷전이고 오로지 극세사의 팔과 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륨 있는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게다가 피부가 상하거나 살이 트거나 윤기와 탱탱함을 잊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하여 V라인과 S라인을 지닌 ‘베이글녀’가 되는 것이 지상의 목표다. 물론 이 모든 건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 각종 성형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최신 화장품, 음식, 피트니스 산업의 ‘핫 아이템’들을 소비해야만 한다. 다이어트산업은 패션산업과 의료산업 및 식품산업 등과 손을 잡고 육체와의 전쟁을 벌인다.

요즘 10대 여학생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 사이즈는 키 170㎝에 50㎏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기아상태’의 몸을 꿈꾸는 것. 입시를 위해 하루를 분 단위로 나누어 사느라 운동할 시간조차 없는 중고생들에게 대체 이게 가당키나 한 사이즈란 말인가. 대체 무엇 때문에 10대들은 그토록 ‘스키니한 몸매’에 목을 매는 것일까.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육체는 전시되고 소비되는 상품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10대의 걸그룹들은 이른바 ‘삼촌팬’들을 향해 거의 반(半)나체로 몸을 흔들어댄다. 날 좀 봐주세요, 이 몸을 소비해주세요! 자신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 그들은 살인적인 다이어트로 육체를 혹사한다. 그런데도 정말 그 몸매가 부러운가? 공공연한 관음증의 대상이 되는 걸 자신감이라고 착각하고, 최상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육체의 소외를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으로 포장하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 시대에 육체는 영혼의 집이 아니라 일종의 ‘스펙’이다. 다이어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자신을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가 된다. 광고는 아낌없이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지상명령을 내린다. S라인, 극세사 다리, 초콜릿 복근 등을 장착한 육체 이미지는, 그렇지 않은 육체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뚱뚱한 당신은 자신의 상품성을 관리하지 않은 게으름뱅이거나 자기 관리에 실패한 루저다. 그러니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들 몸을 혹사시킬지어다!

“아름다움과 날씬함은 그 어떠한 자연적인 친화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통통함과 뚱뚱함이 아름다움으로 간주된 곳도, 시간도 있었지만, 소비사회의 입구에 만인의 권리 및 의무로 새겨져 있는 강제적, 보편적, 민주적인 이 아름다움은 날씬함과 떼어놓을 수 없다. 형태의 조화에 근거하는 아름다움의 전통적 정의에 의하면, 뚱뚱하든 또는 날씬하든, 땅딸막하든 또는 호리호리하든 상관없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 현대적 아름다움은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몸이 지니는 아름다움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자연스런 살붙음을 부정하고 모드를 예찬하는 남녀 패션모델의 외형에서는 마르고 야윈 것도 아름다움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미인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10년 전만 해도 나무젓가락처럼 빼빼 마른 여성을 미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날씬함이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이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날씬함만이 아름다움의 조건이 되고, 몸의 모든 부위는 ‘관리대상’이 되었다. 참으로 기이한 육체잔혹사다. 과연 우리는 자기 육체의 주인인가. 자신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당하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적인 생활이 공개되는 걸 말할 수 없이 불쾌해 하면서도, 대체 이 시대의 소년, 소녀들은 왜 그토록 타인의 시선을 갈망하는 걸까. 잊지 말자. 그대들의 몸은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고 일하고 관계 맺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비에 의해,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한, 우리의 몸은 노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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