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국가 일본
다카하시 도시오 지음·김재원 외 옮김 | 도서출판b | 207쪽 | 1만4000원
호러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공포를 유발하는 주체와 행동의 ‘이해 불가능성’이다. 이해가 안되기에 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게 호러 소설이다. 이해가 불가능하면 해결도 불가능한 법이다. <호러국가 일본>은 이 같은 ‘해결 불가능성’을 지렛대 삼아 일본 사회의 병리현상을 포착한다.
일본은 호러물의 나라다. 소설, 게임, 만화, 영화 등에서 호러가 주류 콘텐츠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왜 일본은 호러물이 범람할까.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그 연유를 캐묻는다.
일본에서 호러물이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이다. 버블 붕괴는 허탈과 공허를 심화했다. 그 정점은 1995년 전후이다. 호러 문학상이 등장하고 문학계에 호러 붐이 일어난 것도 이때다. 1995년 <링>을 필두로 우수한 호러 소설이 쏟아져나왔다. 또 호러물의 콘텐츠는 다양화됐다. 좀비가 등장하고 피가 난무하는 ‘바이오해저드’라는 컴퓨터 게임이 히트쳤다. 신용불량자 문제를 다룬 호러 소설 <화차>도 버블 붕괴에 대한 공포를 다룬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호러물의 성장과 더불어 현실에서도 공포스러운 사건이 잇따랐다는 점이다. 고베 대지진, 옴진리교 사린 가스 테러,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사건, 중학생의 연쇄살인 등이 일본을 뒤흔들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접해보지 못한 공포감을 안겨줬다.
특히 기묘한 살인사건들은 전염되듯 줄을 이었는데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해 불가능했기에 일본 사회는 더 오싹했다. 저자는 사회 곳곳에 호러적인 것이 침투해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의 호러 현상을 ‘해결 불가능성에 의한 내적 파괴’라고 부른다. 이는 문제가 연거푸 발생하는데도 해결 방향을 못 찾고,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펑’ 하고 폭발해버리게 된다는 의미다. 이때 규범, 질서, 사회가 붕괴된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에서 ‘묻지마 살인’이 발생했을 때 사회는 그 현상을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했다. 저자가 보기에 그 원인은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둔 문제들이 어느 순간 폭발한 것일 뿐이다. 호러물의 범람은 해결 불가능한 일들의 축적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 속에 시민들의 허탈과 공허는 증폭된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해결하지 않고 쌓아둔, 폭발성 있는 문제를 가득 안고 있는 호러국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세상은 일본인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피난 대란이나 혼란 같은 상황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방사능이 무서운 줄 알면서도 방사능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살아가는 현실. 이 얼마나 오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