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버무려 내놓는 식당

김지숙 | 소설가

지난주에 상도역 부근에 있는 희망식당 ‘하루’에 갔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당한 분이 운영하고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요리나 서빙을 도왔다. 수익금은 파업기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친구가 그날 자원봉사를 한다고 해서 응원차 간 길이었다.

메뉴는 비빔밥. 반찬도 푸짐했다. 식사 5000원이 꽤 저렴하다 느꼈는데 술 두 병을 사갔더니 안주하라고 제육볶음과 부침개가 끝없이 나왔다. (술을 판매하지 않으나 한 명당 1병까지는 들고올 수 있다.) 내고 온 돈은 기부금이 아니라 안주 값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친구는 두부샐러드를 만들었다. 두부가 썰린 모양이나 소스의 양을 트집 잡아가며 친구를 놀렸지만 사실 맛이 괜찮았다. 한쪽에는 파업을 지지하는 손님들의 글이 가득한 노트가 있었다. 그곳은 밥맛 좋고 저렴한 식당인 한편 파업현장이기도 했다.

[2030콘서트]희망을 버무려 내놓는 식당

내가 처음 파업현장에 가본 것은 대학 학보사에서 일할 때였다. 파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움츠러들었다. 점잖게 넥타이 매고 출근하던 분들의 파격적인 변신이 낯설었고, 그들이 무수히 거듭되는 패배를 반복하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까봐 두려웠다. 노동자의 입장에 서보지 않아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파업에 대해서 내가 무언가 진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자신이 노동자가 된 뒤부터였다. 한때 몸담았던 작은 회사에서 6개월에 네 명이 그만두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그만둔 이유는 인턴기간이 턱없이 길어서, 늘어가는 겸업에 지쳐서, 구두로 약속했던 연봉보다 턱없이 낮은 돈을 주어서 등이었다. 공통점은 애초에 사장이 계약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사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것도 많이 주는 거라고, 사장님들의 고정 멘트를 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사장에게 항의했다. 돈을 주지 않으려는 자와 약속했던 돈을 받으려는 자의 신경전이 좁은 사무실 안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은 노동자 측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대기업이었다면 파업을 도모해볼 수도 있었을까. 5명이 내근하는 작은 회사에서 파업이란, 개그에 가까웠다. 사표를 내고 나가는 직원의 뒤통수가 안 보이자마자 사장은 다른 직원에게 취업사이트에 모집공고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한 번 모집할 때마다 열 명이 넘는 지원자가 들어왔고, 인력은 쉽게 대체되었다. 문제는 새로운 사람을 뽑아도 그만두기를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회사가 탄탄하게 유지될 리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은 자신 없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에 얼마간은 서운함을 느끼고는 한다. 그건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없는 인력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하면, 노동자는 더욱 소속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 그런 기업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희망식당을 찾기 일주일 전쯤, 쌍용 희생자 22명의 분향소가 강제 철거되는 일이 있었다. 현장을 보지 못한 나는 검색을 해보려고 했지만 쌍용 렉서스에 대한 기사만 떴다. 노동자들이 죽어도, 애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데도 회사는 건재하다는 건가. 대체될 수 없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아까울 뿐이었다.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MBC 파업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사의 유례없이 긴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멤버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 외주 업체를 고용해가며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 파업을 하고 있는 수십 명의 언론 노동자들에게 해고·대기발령 등 중징계도 내렸다. 하지만 누군가를 그 자리에 채워 넣는다고 해도,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가능한 부품으로 보는 시선을 가진 회사라면 한계가 불을 보듯 뻔하다.

파업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이기를 넘어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같은 노동자로서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인 내 친구는 희망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파업 현장에 들러 1~2시간 그저 서 있기라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인 나는 희망식당을 나오며 응원을 보내는 눈빛을 쏘며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온 것이다. 물론 밥이 정말 맛있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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