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 카르티에 브레송·샤우덱 두 개의 사진전

주영재 기자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은 사진을 기록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라는 확고한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체코의 사진작가 얀 샤우덱(77)은 경멸과 추앙,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선 인물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일상에서 사진의 조형성을 찾았다면 샤우덱은 상상에서 조형성을 만들어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과장과 특이한 표현을 철저히 배격했지만 얀 샤우덱은 평범한 인물들의 기괴함을 작품의 전면에 내걸었다.

‘모든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으로 통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이자 현대사진의 문을 연 선구자이며, 세계사진거장협회인 매그넘의 공동창립자. 그는 살아서는 신화였고 죽어서는 전설이 됐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9월2일까지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대표작 250여점과 함께 인간 카르티에 브레송을 말해주는 자료 125점과 데상 작품 2점을 선보인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미학은 우연의 마주침이 빚어낸다.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1952)의 불어판 제목은 ‘재빠른 이미지’다. 재빠른 이미지란 예견치 못한 특별한 상황을 남몰래, 재빨리, 단숨에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순간포착과 우연미학의 산물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소형 카메라인 라이카로 거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대상을 신속히 촬영해 정적인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1932). 생 라자르 역의 뒤쪽 울타리의 틈을 통해, 고여있는 물 위를 막 뛰어오르는 한 남자를 포착한 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1932). 생 라자르 역의 뒤쪽 울타리의 틈을 통해, 고여있는 물 위를 막 뛰어오르는 한 남자를 포착한 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동적인 요소와 함께 빛과 그림자도 그의 사진미학에서 중요하다. ‘찰나의 미학’의 대표작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이다. 파리 생 라자르 역 울타리 부근에서 물웅덩이를 건너뛰려는 남자의 동작은 수면에 반사된 그림자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룬다. 뒤쪽 벽면의 포스터 속 무용수의 동작과도 대칭된다.

역사의 현장을 담아왔던 저널리스트로서 카르티에 브레송은 르포 사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사진작가들에게 한 번 가버린 것은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 작업의 고충과 위력이 비롯된다.” 그는 르포에 대해 현실을 감지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카메라라는 스케치북에 담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일상을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촬영했다. 1937년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행사를 보려고 며칠씩 줄을 서있다가 정작 행사 중에는 잠에 곯아떨어져버린 인물을 찍은 사진에선 그의 사진적 관점이 잘 드러난다.

얀 샤우덱의 작품들은 사진과 회화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는 환상적인 영상미를 얻기 위해 흑백사진을 찍어 수채화를 그리듯 색을 입히고 여러 사진을 중첩시켰다. 사진에 손을 대는 것을 금기시했던 주류의 배척을 당한 것은 당연했다. 사진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빛의 예술에서 색채 예술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대인 학살과 소련에 무력으로 진압당한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을 겪었던 그는 모든 비극과 희망의 창조자인 인간을 탐구했다. 사랑, 가족관계, 탄생과 죽음처럼 인간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사진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사진 속 벌거벗은 인간들은 순수한 에너지, 감정과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 엉키고 만났다.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로 도발적인 포즈는 감춰놓은 욕망을 고백하라고 채근하는 듯하다.

샤우덱의 ‘햄릿, 덴마크의 왕자’(2002). 흑백사진 위에 채색을 더해 해골을 든 젊은 여성의 육체가 회화 속 인물처럼 표현됐다.

샤우덱의 ‘햄릿, 덴마크의 왕자’(2002). 흑백사진 위에 채색을 더해 해골을 든 젊은 여성의 육체가 회화 속 인물처럼 표현됐다.

반면 흑백사진 위에 칠해진 원색은 생명력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양화의 ‘바니타스’를 연상시키는 ‘햄릿, 덴마크 왕자’(2002)에는 노란 숄을 허리와 어깨에 두른 반라의 여성이 한 손에 해골을 들고 있다.

홍조를 띤 뺨과 젊은 육체는 인생의 절정기를 맞고 있다. 그렇지만 죽음은 그의 앞에 다가와 있다.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삶과 죽음은 가까운 듯 멀다. 제목과 인물의 성불일치는 인간이 본디 남성성과 여성성이 한데 얽힌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읽힌다.

샤우덱은 감시를 피해 1971년부터 지하실을 작업공간으로 택했다. 어둡고 곰팡이 슨 지하실 벽은 그대로 혹은 창이 나거나 하늘로 열린 듯 푸른 하늘과 구름으로 채색되어 작품의 배경으로 끝없이 변주된다.

좁은 지하방은 그의 상상력으로 끝없이 확장되는 무대가 된다. 화장을 하듯 채색된 인물들은 그 안에서 배우가 된다. 그의 첫 국내 전시는 7월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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