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처녀는 재산! 연애는 미소년! 그럼 아내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처녀는 재산! 연애는 미소년! 그럼 아내는?

[프레시안 books]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

초등학교 다닐 적 집안어른은 말했다. 여자는 결혼해서 취미 생활을 할 정도의 교육만 받으면 된다고. 취직해 봤자 남자들 그늘에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곧 그만 둔다고. 남편을 잘못 만나서 돈을 벌어야 하는 불운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그런 말을 듣고 자란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주변에는 취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여학생들 밖에 없었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부모님 그늘 아래 독립을 걱정하지 않는 젊은 여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불과 10여 년 만에 강산이 변했다는 이야기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 여자의 독립적 경제력은 결혼의 중요한 조건이다.

지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와 윤리들, 우리는 그것이 예전부터 쭉 옳았고 당연했던 것이라고 믿기 쉽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만'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들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들의 상대성과 역사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 <아내의 역사>(매릴린 옐롬 지음, 이호영 옮김,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그 전에 우선 지금의 상식이 형성되어 온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현재를 의심하는 데 디딤돌이 된다.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이호영 옮김, 책과함께 펴냄)는 여성, 사랑, 결혼에 관한 '상식'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과거의 아내들이 무슨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살았는지 기술한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아내의 역사>에 따르면, 낭만적 사랑이 결혼 결정에 중대한 요인이 된다는 생각은 옛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낯선 것이었다. 부부관계는 수직적 명령-복종의 관계였고, 동등한 동반자 관계가 정립된 것은 오래지 않은 일이었다. 2000년 가까이 남편은 아내를 구타할 합법적인 권리를 가졌고, 아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결혼 후 직접 벌어들인 소득 모두 남편의 소유였다.

오랫동안 임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은 죄악으로 치부되었다. 결혼 생활이 독신 생활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유통되던 시절도 있었다. 긴 세월 아내의 성적 쾌락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었다. 지금은 당연시 되는 피임이 합법화 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게 결혼과 사랑, 여성에 대해서 지금과 다른 모든 생각들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의 상식은 단지 지금과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의 시각에서 해괴해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상식은 옛날에도 상식이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의 상식이 정립되기까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수고'가 필요했다.

아내의 독립적 지위, 결혼 의사 결정권, 사랑을 결혼의 중대한 요인으로 보는 관점, 아내의 재산권과 경제적 독립, 부부의 동반자적 관계, 성적 쾌락의 용인, 이혼과 간통의 가능성. 이들은 저자가 설정한 역사의 분절점들이며, 변화를 지시하는 기준이다. 저자는 이들이 불가능했던 시대와 가능해진 시대를 구분하면서 역사를 서술한다.

성경과 그리스·로마 시대의 아내에 대한 사회적 관습들은 2000여 년간 기혼녀에 대한 처우의 원형이 되었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태초의 사건은 여성이 본질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의존적이라는 생각의 모태가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아내들은 남편의 재산과 자식을 낳는 도구로 취급되었고, 아들의 어머니로서만 존중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결혼은 신랑과 신부의 감정을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재무 거래"(49~50쪽)였다. 처녀는 아버지의 소유물이자 아버지에 의해 남편에게 양도되는 재산이었다. "그 누구도 영혼의 반려에 대한 갈망을 결혼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54쪽) 대신 이상적인 결합을 소년과의 동성애에서 찾았다. 성경의 시대와 그리스에서 오직 남편만이 이혼을 제기할 권리와 간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4세기의 교부철학자들은 오직 출산을 위해서만 동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쾌락을 위한 성생활을 비난했다. 당연히 아내의 성적 쾌락은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신학자들은 결혼생활을 과부의 삶이나 처녀의 생활보다 더 열등한 상태로 여겼다.

변화는 점진적이지만, 획기적인 분절점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옐롬에 따르면, 루터의 종교 개혁은 중대한 분절점 가운데 하나이다. "아내가 남편의 명령에 따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하고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남편의 공인된 동반자가 되는 형태"(171쪽)로 프로테스탄트의 아내들은 가족 관계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는 데 일조했다. 아내들은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편지 쓰기, 사업상의 여행 등의 활동으로 종교적, 사회적 개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영국의 튜더 왕조 시대, 결혼을 결정할 때 사랑을 중시하는 관점이 싹트기 시작했다. 여성은 거부권과 선택권을 가졌다. 청교도들은 자식을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시키는 부모들을 비난했고, 결혼 생활에서 정신적 조화와 사랑을 강조했다. 영국인은 대륙의 유럽인에 비해 연애결혼을 더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서로를 동반자로 여기는 새로운 결혼 형태가 차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누구나 사랑의 이름으로 짝을 찾을 권리를 가지며, 배우자들은 애정, 우정, 존경, 공통의 가치, 관심으로 이어져있고, 부부의 수평적 관계가 부모자식의 수직적 관계에 우선한다는 생각이 결혼의 새로운 이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옐롬은 또 하나의 중대한 분절점으로서 혁명에 주목한다. 18세기 서양 여성들은 정치의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서로를 동반자로 여기는 결혼 형태가 확산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 여성들은 자주 정치적 대화에 참여했고, 가령 보스턴에서는 수입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벌였다. 프랑스 혁명기 여성들은 남편 대신 출판물을 저술하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소장을 작성하고 법정에서 변론하는 등 정치에 참여했다. 망명자의 아내들은 무능해진 남편 대신 생계 부양자가 된 사실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혁명이 끝난 후 아내들의 지위는 원점 회귀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여성들은 공화국을 위해 봉사할 시민들을 길러내도록 요구 받았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과서가 프랑스 어머니들에게 배포되었다. 자녀를 교육할 권한이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에게로 넘어오면서, 어머니의 지위가 격상된 듯 했으나 결국 어머니들은 수동적인 시민으로 머물렀을 따름이었다.

서두에 말했듯 기혼녀들은 오랫동안 친정 부모의 유산은 물론 직접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도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이런 오랜 관습이 바뀐 것은 놀랍게도 19세기가 지난 후의 일이다. 1839년 미국의 미시시피 주에서 아내의 재산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후, 1870년대 영국과 스웨덴에서 독자적인 재산과 수입에 대한 아내의 처분권을 허용하는 법을 선포했다. "역사를 통해 여성의 독립성은 스스로 벌었던 물려받았든 간에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 신장되었다"(400쪽)는 것이 옐롬의 일관된 주장이다.

또 하나 옐롬의 일관된 관점은 역사적 위기가 여성의 독립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옐롬은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서부 개척기, 제2차 세계 대전 등 세계사적 위기 상황에서의 여성에 특별히 주목한다. 그러한 위기 상황이 여성의 독립성을 계발시킨 천혜의 기회였다는 관점을 줄곧 유지한다. 이때 여성은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에 대한 상식은 어떤 역사를 거쳐 왔을까.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천상의 정신의 소유자, 성적 욕망이 없는 순수한 '집안의 천사'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순결한 신부나 정숙한 아내를 묘사한 19세기의 소설들, 여성의 순결 이데올로기를 부추겼던 의학 보고서들을 통해 널리 퍼졌다. 성욕의 결핍은 좋은 여자의 특징으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1870~80년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사상가들과 의학자들은 여성의 성욕이 남성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점점 "출산 중심적 결혼에서 사랑과 동반자로서의 부부 관계, 그리고 즐기는 성에 기초한 결혼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갔다."(462쪽) 성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평등한 결혼 생활을 형성해 가는 추진력이 되었다.

단 100년 동안 일어난 혁명적 변화를 저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기술한다.

"사회가 여성은 어떤 성적인 욕망도 품어서는 안 된다고 억압했기 때문에 19세기 중반의 아내들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면 불안해하곤 했다. 반면에 1세기 후 아내들은 성적 욕망이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면 불안해했다." (466쪽)

1930년대 즈음 미국인들은 부부생활에서 성적 쾌락을 추구하고, 산아 제한의 권리를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전에는 산아 제한과 피임은 죄악시되었다.

하지만 이런 간략한 요약은 이 책의 매력을 반만 보여준다. 어찌 보면 논지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 책의 매력은 이 논지를 개진하기 위해 근거를 대는 방식에 있다. 저자는 성경, 신화, 그리스 비극, 중세의 낭만적 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18~19세기 근대 소설들 등 문학 작품에서부터 그림들, 만화들, 법전들까지 풍부한 자료에서 아내의 표상과 결혼관을 간취한다.

가령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분석하면서 당대 낭만적 사랑을 중시하는 풍토가 싹트기 시작했음을, 그러나 남편에게 복종을 당연시 하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맹위를 떨쳤음을 동시에 읽어낸다.

저자는 또한 클레오파트라에서부터 엘로이즈, 마저리 켐프, 앤 브래드스트리트, 애버게일 애덤스, 마가렛 생어 등 주요한 여성들의 전기적 사실을 풍부하게 소개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서사적 재미를 제공한다. 이때 중요하게 인용되는 일기와 자서전 등에서 독자들은 그녀들의 내밀한 희로애락까지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더 훌륭한 미덕은 '거물급' 여성뿐만 아니라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못한 필부(匹婦)들의 삶에도 주목했다는 것이다. 가까운 과거로 올수록 저자는 평범한 여성이 직접 쓴 일기, 편지, 회고록 혹은 구술담 등을 주요한 자료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당시 평범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울고 웃었는지, 무엇을 고민했는지 재구성한다.

가령 미국 흑인 노예 여성의 구술담을 통해 저자는 그들이 선택권 없이 주인이 지정하는 상대와 결혼해야 했으며, 그나마도 가족과 강제적으로 이별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생생한 구술담에서 독자는 그녀들의 통절한 슬픔까지 느낄 수 있다. 또 서부 개척기 미국 여성의 일기를 통해서 독자는 개척자 아내들의 일상과 고난과 희로애락을 훔쳐 볼 수 있다. 저자는 영웅이 아닌 장삼이사들의 일상적 삶을 역사의 중심 무대에 올린다는 아날학파의 이상을 충실히 구현한 듯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실상 이 책의 관심사는 미국 기혼 여성과 그 직계 선조격인 서구 유럽 여성들의 역사이다. 다소간 미국 여성을 미화한다는 혐의도 있다. 동구 유럽, 러시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아내는 물론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기술하지 않은 것이 작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 여성을 여성 일반으로 호명하는 일 이면에 제국주의적 시각이 놓여 있는가? 이 문제는 신중한 접근을 요하는 사안이다. 중대한 혁명을 경험했고 고난을 겪도록 내몰렸기에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시각에서 얼마간의 오만함을 읽은 것은 나의 오독일까. 그것이 그런 역사를 가지지 못한 타민족 여성들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과민함일까.

어쨌거나 예전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에도 모든 것은 지금과 같지 않을까? 한번 공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가령 자식의 생후 3년간 어머니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자식의 성장에 그 누구보다 어머니가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생각,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이런 생각들도 '단지 이데올로기'였음이 밝혀지는 시대가 혹시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어머니'란 말이 들어가는 모든 자리에 앞으로 '아버지'를 대입하여 말하는 풍조가 새로이 생길지도 모른다. 혈연에 연연하는 것을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새로운 상식이 활개를 펼칠지도 모른다. 누가 알랴?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