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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쓴맛…"불임 시술하면 돈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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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쓴맛…"불임 시술하면 돈을 드립니다?!"

[프레시안 books]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만일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당신의 생명에 보험을 들어두고 당신이 죽었을 때 가족 몰래 보험금을 타먹는다고 하자. 이런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당신이 점점 나이 들어 생산성이 떨어지면, 그 회사는 당신이 빨리 죽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 회사는 보험금을 타먹을 권리를 증서로 만들어서 투자가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돈벌이 대상이 된다. 이래도 되는가?

요새 우리나라에서 야구의 인기가 대단하다. 주말마다 야구장 매표소 앞에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새치기를 한다면 누구나 화를 낸다. 하지만, 새치기로 돈을 버는 회사가 많이 있다. 다수의 노숙자를 동원해서 매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입장권을 대량 매입한 다음 되파는 방법은 암표 회사가 자주 사용하는 원시적인 수법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암표 회사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야구장뿐만 아니라 극장, 병원, 국회 등 돈이 될 만한 곳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시장 원리가 확대 적용되는 구체적 사례 혹은 상품화의 사례들이다. 마이클 샌델의 최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시장 원리의 확산 및 상품화 경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로 저자는 우리에게 정의론의 대가로 인식되어 있어서, 그가 자본주의 시장에 관해서 책을 쓴다면 으레 '시장은 정의로운가'를 주제로 삼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에서 그는 정의에 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와이즈베리
제목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돈으로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장 원리의 확대 및 상품화 경향은 오래 전부터 석학들의 관심거리요 우려의 대상이었다. 약 70년 전, 칼 폴라니는 근대 서구 사회를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으로 묘사하였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현대 서구 사회를 "대붕괴(The Great Disruption)"로 묘사하였다.

"대전환"과 "대붕괴",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비슷하다. 폴라니가 말하는 대변환은 가치관의 극심한 혼란과 인간 자존심의 손상을 수반하는 사회적, 문화적 대혼란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고, 후쿠야마가 말하는 대붕괴는 전통적 문화 공동체의 붕괴, 모든 위계 구조의 붕괴, 도덕의 몰락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어떻든, 폴라니가 대상으로 삼은 근대 서구 사회와 후쿠야마가 대상으로 삼은 현대 서구 사회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은 이 두 사회 모두 자본주의 시장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지배가 어느 정도 심화되고 있는가를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희재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 너무나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며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흔히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한 미국 발 금융 위기가 기업가들의 탐욕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옳다면, 해결책은 탐욕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금융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샌델은 이런 주장이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상품화의 급속한 확산이 더 근원적인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시장 경제를 가진 시대에서 시장 사회를 이룬 시대로 휩쓸려 왔다. 샌델은 이 두 가지 개념의 차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시장 경제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인 반면, 시장 사회는 시장 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은 바로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이다. 사실 이번 책이나 <정의란 무엇인가>는 도처에서 마르크스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두 저서에서 저자는 마르크스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선 돋보이는 부분은 상품화의 구체적 사례들이 무척 많이 수집,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본주의 시장이 최고로 발달한 미국에서 상품화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저자는 상품화 사례들을 새치기, 인센티브, 도덕 밀어내기, 삶과 죽음의 시장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제1장은 새치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새치기 꾼을 대량 고용한 회사가 국회 공청회에 참관하려는 수많은 시민들을 밀어내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새치기 전문 회사뿐만 아니라 돈 받고 새치기를 눈감아주는 수많은 관행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에 걸린 여성에게 불임 시술을 장려하기 위한 현금 보상, 학교 성적이 오를 때 학생에게 지급되는 현금 보상, 학생들의 성적을 올린 교사에게 지급되는 현금 보상, 금연이나 체중감량에 대하여 지급되는 현금 보상, 심지어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의 구매 등 실로 여러 가지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가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시장이 도덕을 밀어내는 사례들을 다루고 있는데, 고객의 의뢰를 받아서 대신 사과해주는 회사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잘못을 해놓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대신 사과하게 하면 과연 화가 풀릴까?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선물 대신 현금을 주는 일이 점점 더 확산되는 현상도 상품화의 일종을 보고 있다. 선물 대신 현금을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경제학자의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생명 보험에 얽힌 복잡한 상품화 그리고 이어서 인간 생명을 도박의 대상 내지는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작태에 관해서 살펴보고 있다. 금년에 어떤 유명인사가 죽을 것이지를 맞추는 도박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의 다음 공격 목표가 어디가 될 것인지를 맞추기가 이 그 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명명권을 사고파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야구장의 이름이나 지하철역의 이름을 기업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품화가 구체적으로 왜 문제인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상품화를 적극 지지한다.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댄다.

그 하나는 '불평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부패'의 문제다. 상품화는 부자들에게는 편리함을 주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기회를 앗아가며 가난의 고통을 더 아프게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공정치 못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부패'의 개념은 다소 애매한데, 품격의 저하나 가치의 왜곡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떤 것이 상품화되면 그것의 가치가 손상되고 품격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서, 돈에 팔린 우정은 이미 우정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며, 돈으로 박사 학위를 구매할 수 있게 하면 그 권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정당한 과정을 거쳐 박사 학위를 획득한 사람들의 인격에도 먹칠을 한다.

불평등과 부패에 입각한 저자의 비판에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통계숫자와 치밀한 논리를 앞세운 경제학자들의 상품화 옹호론을 뒤엎기에는 왠지 좀 엉성해 보인다. 경제학자들의 옹호론을 무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물론, 상품화 문제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저자가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책 서두에서 인정하고 있다.

다만, 최소한 이 책이 상품화를 둘러싼 온갖 복잡한 질문에 대한 공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에 대하여 숙고할 철학적 틀을 제공하기를 바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상품화가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제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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