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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를 만난 마르크스의 수줍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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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를 만난 마르크스의 수줍은 고백?

[프레시안 books] 찰스 더버의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유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통방통하게도 사주쟁이가 말한 것이 그런대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살다 보면 정말로 유령 또는 귀신이 우리 곁에 있는 듯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그런데 설령 유령 또는 귀신이 실재한다 해도 그들이 별로 인간사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흔히 말하기를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면서 가끔 유령으로 출몰하면서 앙갚음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세상이 일찌감치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았을까? 조선 시대에 억울하게 죽어간 노비와 양민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식민지 시대 역시 무수히 많은 억울한 죽음을 낳았고, 한국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은 목숨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에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간 민주 투사들은 얼마나 많았으며, 민주화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은 혼령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만약 이 모든 죽은 자의 영혼들이 환생하여 우리 인간사에 적극 개입해주시기만 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한결 쉬워질 수 있을 터.

민주화 되었다는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도 서민들의 세상살이는 더 어려워졌고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고, 살기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었다. 게다가 지긋지긋한 이명박 정부에 이어 앞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니,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인다. 이렇게 갑갑하기 그지없을 때는 제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라도 나타나 우리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우리처럼 갑갑하기는 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세상에서 희망과 대안을 찾아 헤매다가 영국 런던의 한 공동묘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 공동묘지에 130년 전 묻힌 카를 마르크스의 묘지 앞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출몰한 귀신을 만나게 된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귀신이다.

찰스 더버는 유령 마르크스와 대화를 시작하고 그들의 대화는 밤새도록 계속된다. 그런데 유령 세상이 좋은 게, 통시대적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130년 전에 죽은 마르크스와 대화하는 간간이 65년 전에 죽은 케인스의 유령이 나타나 끼어들고 또한 몇 년 전에 죽은 밀턴 프리드먼의 유령도 할 말이 있다며 끼어든다.

공산주의의 유령은 사라졌지만, 마르크스의 유령은 출몰한다

▲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찰스 더버 지음, 강정석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책읽는수요일
찰스 더버가 쓴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강정석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의 원제는 "마르크스의 유령(Marx's Ghost)"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1848년에 쓴 <공산당 선언>은 "유럽에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43년이 지난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주의 체제는 해체되어 벼렸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의 체제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보였고, 그리하여 인류사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최종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여겨졌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함께 "자유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소리 높여 외쳤고,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티나(TINA)', 즉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고 환호성을 질렀다. 오로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대안들만 가능해 보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가차 없이 내팽개쳐졌다.

한국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온갖 좌파 사상이 넘쳐나던 한국의 진보 운동은 1990년대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대 담론은 없다"면서 오직 작은 생활상의 개선에 주력하자고 하는 시민운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안에 대한 모색은 후쿠야마와 대처가 짜놓은 자유주의 틀 안에서만 조심스럽게 이루어졌고, 따라서 모든 진보적 대안조차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가장 강경한 핵심조차 포스트모던 좌파로 전향하여 정치경제학적 대안이 아닌 철학적 대안으로 후퇴하였고, 사회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철학적 개인주의로 함몰되었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던 철학의 모국 프랑스마저도 '승리한 자유주의의 지배' 체제 하에서 별로 태평성대를 누리지 못한 모양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 불과 2년 뒤인 1993년에 자크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큰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책에서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옹호하면서 자유주의를 비판하였고, 승리한 자유주의의 이름하에 자본주의가 착취와 억압, 양극화 대량 실업을 지속하는 한,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계속 출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사라졌고 또 사라져 마땅했지만, 마르크스라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발발과 함께 <자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찰스 더버의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진보적)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거대 담론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다른 대안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유령 마르크스의 입을 빌려 찰스 더버는 독일과 스웨덴 등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역시 (사유 재산 제도와 시장 경제를 인정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몬드라곤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협동조합 운동 역시 (아나키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티나'를 넘어서는 좋은 대안이라고 말한다. 남미 볼리비아의 대통령 모랄레스가 토착 인디오 원주민의 정서와 생존 방식에 바탕을 두고 말하는 생태적 사회주의 역시 글로벌 자유주의에 맞서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령 마르크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실토하다

그렇다고 찰스 더버가 마르크스의 모든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전체주의적 독재로 이어지지 않았냐며 유령 마르크스를 추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르크스로 하여금 국가 권력의 중요성과 그것의 장악에 지나치게 의존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는 마르크스 자신도 참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실토하게 만든다.

또 찰스 더버는 마르크스가 생전에 자본주의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금융 위기 속에서 자멸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컨대 1930년대의 대공황 속에서도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고 오히려 케인스 같은 개혁가들의 노력에 의해 되살아나지 않았느냐며 유령 마르크스를 추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령 마르크스로 하여금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에 한계를 있었음을 실토하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찰스 더버는 마르크스가 생전에 사회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개량주의"라고 비난하지 않았느냐며 추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령 마르크스로 하여금 자신은 교조적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여러 번 발언했다는 점도 확인하게 만든다. 게다가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운동 역시 마르크스가 생전에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 끝에 "그게 아니라, 실은…"이라고,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

레이디 가가와 페이스북 그리고 아랍의 봄

지난 신문에서 레이디 가가의 인도네시아 공연이 현지 무슬림의 반대로 좌절되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나스닥 상장으로 수십억 달러를 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스토리 역시 신문을 채우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와 함께 스페인에서 본격화되는 금융 위기가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제2차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 역시 언론에 보도된다.

이런 소식들에 대해 마르크스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찰스 더버는 마르크스를 되살아나게 하여 그를 오늘날 대중문화와 정치경제적 쟁점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그렇지만 역시 유령 마르크스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은 '타흐리르 광장의 이집트 청년들'과 '미국 매디슨과 위스콘신에서 새롭게 일어난 노동자 운동',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벌이는 학생과 평민들의 저항'이다. 그는 '티나'를 극복하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이집트와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적인 항의와 노동자 파업 그리고 새로운 페이스북 전략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시나브로 변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동 운동만이 아니라 사회복지 운동, 협동조합 운동, 평화 운동, 생태 환경 운동, 반인종주의 운동, 여성 운동 등이 모두 필요하다고, 그리고 이 모든 운동이 제대로 추진되다 보면 결국은 자본주의 질서를 넘어서는 의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또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는 바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이며 동시에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의 위기인 바,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노력이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로, 남미에서는 토착 사회주의로, 아랍에서는 민주화 운동으로, 미국에서는 월가 점령 운동으로 터져 나와 글로벌 차원에서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수치며 환영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찰스 더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무너진 폐허 위에서 오히려 파시즘과 나치즘의 후예들이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현상이이다. 1848년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가 퇴보하면서 보나파르트 황제정이 복고되었다. 독일에서는 1930년대 초반 대공황과 함께 바이마르 자유주의 정부가 붕괴되면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했다.

찰스 더버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현상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슈퍼 자본주의와 월마트 자본주의의 지배에 따라 미국의 남부와 농촌, 소도시에서는 소상인과 소시민들이 월마트와 농업 대기업들 때문에 몰락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대자본의 후원을 받으면서 폭력적인 민병대와 세금 반대 티파티 운동, 백인 인종주의 단체,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으로 결집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극우파 운동은 미국 공화당을 더욱 오른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예컨대 미국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 같은 이들은 '네오 파시즘'에 해당하는 정치적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프랑스에서도 인종주의적 네오 나치스 세력이 2008년 금융 위기 발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경제 파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와 몰락이 저절로 진보적 대안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퇴행적이고 폭압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희망을 잃은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얻으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찰스 더버는 미국의 진보적 대안 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하는 일상적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로 다가가야 하며, '삶 만들기'가 동시에 '역사 만들기'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자 되세요'라는 시대정신에 호응하여 오직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편 이명박 정부의 99퍼센트 순도 (신)자유주의에 지친 평범한 사람들은 그와 달리 "아버지의 꿈은 복지 국가였다"고 말하는 박근혜가 집권하면 혹시나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과거 박정희-전두환 시절 때처럼)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이 있다. 자칭 진보 개혁 세력은 워낙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에, 이들이 박정희의 딸에 대한 거는 일말의 기대는 더 그런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 진보는 아직도 미국 진보로부터 배울 점이 여전히 많은 모양이다. 적어도 '삶 만들기'가 '역사 만들기'로 되어야 한다고 보는 찰스 더버 같은 사람들로부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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