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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인어공주, '혁명가' 신데렐라…원작대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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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인어공주, '혁명가' 신데렐라…원작대로 읽자!

[프레시안 books] 김민웅의 <동화독법>

김민웅의 <동화 독법>을 읽는 즐거움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서평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책을 읽어야 할 때는 곤혹스럽다. 그런데 그 책이 재미있을 때는 더욱 힘들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데 점점 책에 빠지게 될 때 우리의 감각과 이성은 내부에서 각각 아우성을 질러대며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김민웅의 <동화독법-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이봄 펴냄)이 그렇다. 동화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을 풀어나가는 평론적 성격이 강한 책인데 붙들고 있으면 놓을 수 없다.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을 때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동화독법>은 책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서평적인 성격의 글은 딱딱해지고 이론 위주의 사변적인 글이 되기 십상인데 그렇지 않다. 구어체 문장,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문체가 읽는 이를 편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작품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에서 온다. 동화나 우화 속에 슬며시 담아낸 현실의 긴장과 역사적 생동감을 읽어내는 시선이 독특하고, 작품 안에 치밀하게 숨겨 놓은 반전의 비수를 찾아내는 명철함이 돋보인다.

▲ <동화독법-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김민웅 지음, 이봄 펴냄). ⓒ이봄
<신데렐라>를 보자. 저자는 이 작품을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착한 여자 콤플렉스 등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는다. 신데렐라라는 이름이 '재를 뒤집어 쓴 소녀'라는 뜻에 주목한다. 잿더미 속에 쏟아놓은 콩을 골라줍는 일을 했고, 아궁이 잿더미 옆에서 잘 수밖에 없는 부엌데기. 꿈과 희망이 재가 되어버린 소녀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왕자비를 고르는 무도회에 그 나라의 모든 처녀들이 초대되는 것 또한 기존의 봉건적 질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명성과 파격성이 있다고 본다. 중세 봉건 왕정 체제의 무도회는 멤버스 온리의 특권적 성격의 무도회이지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무도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 구두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선 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데렐라의 발은 나막신을 신고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허드렛일을 하며 고생을 한 소녀의 발이라는 것이다. 특권과 차별과 과시의 욕망으로 뭉쳐 허황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유리 구두가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흘린 눈물과 아픔을 담고 있는 발이 신발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작은 발로 이 힘겨운 세상을 감당하며 살지만 잿더미를 털어내고 무도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갈망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독특한 작품 해석은 <심청전>에도 이어진다.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의 '인당'은 두 눈썹 사이의 혈 자리를 의미하는 인당(印堂)과 한자만 다름에 주목한다. 인당 자리는 제 3의 눈, 마음의 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기운이 교차하고 이 길이냐 저 길이냐 라는 선택이 엉켜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인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심청전>은 '인당수 철학'이 관철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인당수는 풍랑이 이는 죽을 자리가 아니라, 현세를 뛰어넘는 세상을 경험한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온 생명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효의 차원을 넘어서 희생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며, 그런 현실을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청이의 귀환으로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평생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맹인 심학규가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개안과 구원의 문제를 종교적으로 접근한 경판본 <심청전>이 아니라 눈물과 웃음, 비장함과 비속, 해학과 놀이 정신이 어우러져 있는 완판본을 텍스트로 택해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때문에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참 재미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에서도 저자는 재미있는 분석을 한다. 양치기 소년을 일종의 경보 장치라고 보는 것이다. 소년이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는 건 경보 장치가 고장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경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경보 장치 작동+마을의 대응=양들의 안정'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것인데 양치기 소년만 비난하고 상황이 종료되는 식이 되풀이 되는 바람에 결국 양들을 다 죽게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를 퇴치하는 것은 결국 마을 사람들이고 양들도 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면, 늑대 출현에 대한 정보가 한 사람에 독점 되고 그 정보에 마을 전체가 휘둘리는 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감시와 견제 또는 대안을 마련하고 마을 주민 각자가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참여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지점이며, 고장 난 경보 장치를 고치는 것을 개혁이라 하고, 교체하거나 제 3의 대안을 실현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인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에로틱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성에 눈뜨는 사춘기 소녀의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라고 본다. 인어공주의 하반신은 여성성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고 마녀를 찾아가 두 다리를 얻게 되는데, 이 다리는 여성의 바기나에 대한 대체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련과 고통을 각오하고 자신의 성의 주인이 되려는 인어공주는 중세의 종교적 사슬을 끊고 등장하는 여성의 표상이라고 해석한다. 인어공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저자는 이런 결말을 비극적 결론으로 보지 않는다. 복수를 택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지만 공기의 딸이 되어 꽃의 향기를 퍼뜨리고 평화로운 안식과 치유하는 지식을 보내는 선행을 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성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수중계에서 지상계를 거쳐 천상계로 상승하며 불멸의 영혼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은 기근에 시달렸던 시대의 비극을 뚫고 살아난 존재의 내면 세계를 꿰뚫어 보게 해주고 있으며, 인생이라는 숲에서 실종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두려움에 떨지 말고 지혜롭게 위기를 돌파하라고 일깨우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이 책 평론가 김환희의 말대로 여동생 그레텔이 "위기에 처해 더욱 강인해지는 존재, 아기오리와 소통할 수 있는 신이한 존재, 오빠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물의 세계를 건널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행동하며 위급하고 험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고 지혜와 용기를 가진 여자 아이, 공감능력을 가진 인물로 성장하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철학적 책읽기의 결과가 "무엇보다도 성서를 통해 깊이 훈련된 읽기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동화와 우화와 고전 소설을 깊이 있게 읽는 동안 단순한 듯 보이나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이야기에 눈뜨는 과정은 우리에게 책 읽는 기쁨을 선사한다. 그의 경이로운 발견은 우리 모두의 경이로운 발견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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