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자연을 본뜬 발명품들 미래기술은 자연에 있다

김종목 기자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이인식 지음 | 김영사 | 304쪽 | 1만6000원

1941년 어느 날 스위스 전기기술자인 조르주 드 메스트랄(1907~1990)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자신의 바지와 개의 털에 한해살이 풀인 도꼬마리 씨앗이 달라붙은 걸 발견했다. 메스트랄은 도꼬마리 씨앗에 수없이 많이 달린 갈고리를 관찰한 끝에 벨크로를 발명했다. 흔히 ‘찍찍이’라 부르는 여미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새의 날개와 꼬리 모습을 본떠 비행기 설계도를 만들었다. 헬리콥터 설계도는 훗날 실제로 구현됐다. ‘생물영감’(bioinspiration)과 ‘생물모방’(biomimicry)의 사례들이다.

[책과 삶]자연을 본뜬 발명품들 미래기술은 자연에 있다

자연은 근대 건축에도 영감으로 작용했다. 영국은 1843년 템스강 아래를 지나는 터널을 뚫는 데 성공했다. 템스터널을 건설한 사람은 마크 브루넬(1769~1849)인데, 그는 배좀벌레조개(좀조개)가 구멍을 뚫어놓은 나뭇조각을 보고 굴을 뚫는 기술을 생각했다. 좀조개는 일종의 강화제인 액체를 뿜어내 새로 파낸 굴의 벽에 발라서 단단하게 굳어지게 하여 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능력을 가졌다.

20세기에도 자연은 발명의 원천이다.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은 터널을 통과할 때 뭉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굉음이 문제가 됐다. 고속열차 전문가들은 물총새가 입수할 때 잔물결조차 일어나지 않는 점을 주목했다. 길고 끝이 뾰족한 부리 덕분이었다. 전문가들은 열차 앞 부분을 물총새의 부리처럼 만들어 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전신수영복을 입은 수영 선수들이 금메달을 많이 땄다. 전신수영복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모방해 만든 것이다. 이 수영복은 손으로 만지면 조금 거칠게 느껴지는 미세돌기로 덮여 있는데, 상어 지느러미 비늘에도 미세돌기들이 있다. 과학자들은 1980년대 미세돌기가 저항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들도 많이 발명된다. 도마뱀붙이는 어떻게 천장에 매달려 걸어다닐 수 있을까. 도마뱀붙이 발가락 바닥의 작은 주름은 뻣뻣한 털(강모)로 덮여 있는데, 발바닥 한개에 50만개 정도다. 도마뱀붙이 한 마리는 나노 빨판을 약 10억개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도마뱀붙이에서 힌트를 얻어 접착제를 만들었다. 홍합은 자기 몸을 미끄러운 바위에 단단히 밀착시키기 위해 접착성 단백질 섬유(족사)를 분비한다. 카이스트 이해신 교수는 2006년 홍합의 족사 한개가 12.5㎏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표면이 부드러워 꿰매기 힘든 간과 같은 장기 수술 때 쓰기 위해 족사를 활용한 의료용 접착제를 개발 중이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은 신생 분야다. 저자는 “21세기 초반부터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여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난 물질을 창조하려는 과학기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며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로봇공학 분야는 사람, 동물, 식물, 박테리아를 모방한다. 인공장기, 신경보철, 뇌-기계 인터페이스 등 인체의 부품을 교체 또는 보완하는 기술에도 자연은 영감과 모방의 원천으로 쓰이고 있다. 자연중심 기술의 핵심 분야로 떠오르는 집단지능, 떼지능 사례를 설명한다.

저자는 군터 파울리의 환경보존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청색경제’ 개념을 빌려 생물영감, 생물모방의 자연중심 기술을 ‘청색기술’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녹색기술’이 환경 오염 발생 뒤의 사후 처리 대응 측면이 강한 것이라면 ‘청색기술’은 환경 오염을 사전에 원초적으로 억제하려는 기술이다.

지식융합연구소와 과학문화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대중적인 과학 칼럼을 오래 써왔다. 여러 부문을 아우르면서도 쉽고 흥미롭게 과학과 자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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