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일국사의 한계를 넘은 한·중·일 ‘삼국의 관계사’읽음

백승찬 기자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각 권 380쪽·392쪽 | 각 권 2만3000원

역사는 사실의 나열을 넘어 관점의 개입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각기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함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자들의 국적이 공존, 평화가 아니라 침략, 피침략으로 엮여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70년이 다 돼 가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여전히 근현대사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잊을 만하면 ‘망언’이 나오고, ‘피해 배상’이나 ‘사과’ 문제도 여태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세 나라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기술해놓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곪고 덧나 더 큰 아픔을 부를 수도 있다.

[책과 삶]일국사의 한계를 넘은 한·중·일 ‘삼국의 관계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는 2001년 일본에서 나온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 우익단체의 지원으로 후소샤에서 출간한 이 교과서는 일본이 아시아 이웃 국가를 침략한 사실을 부정하고 군국주의를 변호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충격을 받은 세 나라의 역사학자, 교사들은 “생각이 다르다고 싸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서로 만나 이야기하면 함께할 수 있는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2002년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4년간의 작업 끝에 <미래를 여는 역사>를 냈다.

이 책은 의미와 한계를 고루 드러냈다. 한·중·일이 처음으로 공동 집필한 역사책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집필자들이 각기 자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바람에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가 나온 이듬해 이들은 다시 모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이하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이들이 6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쳐 내놓은 새 결과물이다.

[책과 삶]일국사의 한계를 넘은 한·중·일 ‘삼국의 관계사’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사’에 주목한다. 지역, 국경을 넘은 사람의 왕래, 물자의 교역이 광범위하지 않은 전근대였다면 일국사적 관점의 역사 서술이 유효할 수도 있겠으나, 19세기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신만의 역사를 써나갈 수 없었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제국주의를 받아들인 서구 열강은 커다란 배에 선교사, 상인, 군인을 태워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토를 넘나들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서양의 신문물과 영향력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려 했고, 그 소화 정도에 따라 다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이 국사 시간에 배운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은 중국, 일본은 물론 서구 열강과 맺은 관계를 따지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1권에서는 3국 근현대사의 구조적 변동을 시대순으로 다루고, 2권에서는 3국 민중의 생활과 교류를 주제별로 집필했다. 그래서 1권은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좋겠고, 2권은 내키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중학생 수준에 맞춰져 있고,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고교 심화과정 수준이다. 대학생이나 일반인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식민지 개발을 위해 전 세계를 누볐던 서구 열강은 아편전쟁을 통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마각을 드러냈다. 청과의 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1848년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해 홍콩을 빼앗고 광저우, 상하이 등 다섯 항구를 개항시켰다. 이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화이관념’이 무너진 계기였다. 반면 1853년 일본이 미국과 맺은 미일화친조약은 난징조약이나 같은 해 청이 열강과 맺은 톈진조약에 비하면 일본에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일본이 청과 달리 전쟁 패배가 아닌 교섭을 통해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는 청의 태평천국 봉기, 인도의 세포이 봉기 같은 아시아 민중의 저항에 서구 열강이 강압적인 개방 정책을 수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이 개방을 향한 첫발을 비교적 순탄하게 내디딘 것은 이웃 아시아 민중이 피를 흘린 덕분이었다.

서구 열강은 자신을 문명·진보로, 아시아를 야만·미개로 인식했고, 일본은 이 관점을 재빠르게 받아들였다. 근대화의 여정에 속도를 낸 일본은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외교 정책, 즉 함포 외교를 조선에 똑같이 적용했다. 일본은 그동안 대등한 관계를 맺어온 조선을 자신들보다 후발국이라고 여기고, 서구 열강이 아시아와 맺었던 조약보다 훨씬 불평등한 조약을 조선에 강요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로 세를 다져가던 일본은 동아시아 바깥으로 자신들의 제국주의 영향력을 확대할 뜻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서구 열강으로부터 지역 내의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당시 피지배자에게 가장 강력한 저항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였다. 아시아의 피지배 민중은 두 가지 이념의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으며 저항 의지를 다져갔다. 1917년 러시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정권이 세워졌다. 일본은 천황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가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시베리아를 무대로 한 열강의 간섭전쟁에 참여했다. 한국의 독립운동사 맥락에서 주로 이해되던 독립군의 활약도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시베리아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시베리아 간섭전쟁이 끝난 뒤에도 철수하지 않았다. 독립군이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 일본은 시베리아 주둔군과 조선 주둔군을 합세시켜 조선인 독립군의 섬멸에 나섰다.

소련의 레닌, 미국의 윌슨이 민족 자결권을 주장하자,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자결이 세계사의 흐름이라고 여기고 3·1운동을 일으켰다. 중국 지식인과 학생들은 3·1운동을 신선한 자극제로 받아들여 곧 5·4운동을 추동했다. 1919년 동아시아 민중이 반제국주의라는 저항의 이념과 행동을 공유한 것이다.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 정세는 이렇게 긴밀히 엮여 있었다.

한·중·일 3국에 서구 문물이 이식되는 과정, 목적, 결과도 조금씩 달랐다. 182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철도는 반세기 후 동아시아에도 잇달아 선보였다. 서구 열강은 아시아 내륙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철도를 놓으려 했으나, 중국과 일본은 모두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일본은 경제가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철도를 놓았다. 처음엔 영국의 기술자, 자재를 수입해 철도를 건설했던 일본은 곧 자립적인 철도 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륙 침략의 길목이었던 조선에도 서둘러 철도를 놓아 빠른 물자·인력 수송을 준비했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조선을 경유해 만주까지 가는 데 한 달이 걸렸으나, 철도 개통 이후엔 사흘 반나절로 단축됐다. 식민지의 철도는 일본으로 향하는 열차를 상행선으로 불렀기에, 조선에서는 경성에서 부산으로 가는 열차가 상행이었다.

2권 8장 ‘전쟁과 민중-체험과 기억’에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핵심적 주제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수준 높고 사려 깊은 논의가 쉬운 언어로 전달됐다.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에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고통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었더라도 모든 사람을 ‘전쟁 기계’이자 ‘군국주의자’로 만든 이 전쟁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문제는 기억이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었고, 강제적이든 자율적이든 활발한 인적 교류로 인해 세 나라의 영토에 수많은 이주자가 살고 있었고, 일본은 전쟁 가해국이자 원폭 피해국이라는 이중적 위치를 갖고 있기에, 전쟁에 대한 민중의 기억은 제각기 다르게 남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이 불러일으키는 논란은 기억을 둘러싼 세 나라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한 군인을 신으로 모시고 전황을 그린 패널을 시간순으로 배치하는 등 침략의 역사를 전시하지만, 정작 이 전쟁이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 미친 피해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또 세계 최초의 피폭 도시인 히로시마에 세워진 평화기념공원은 핵무기 폐기 같은 평화 과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지만, 평화 담론을 피해자 의식과 결합시키면서 일본인 스스로 희생자 의식에 빠져드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의 침략적 역사성을 제거하여 전쟁의 낭만화를 시도하고 있다면, 히로시마 평화자료관은 역사적 맥락이 제거된 피해 의식을 갖고서 평화의 낭만화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한국 측 대표저자인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일본에서는 ‘죽음은 평등하다’는 관점이 있어서 침략자와 피해자를 같이 기념하지만, 한국은 이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의 역사를 써냈다. 6년간 19차례의 국제회의와 60차례의 국내회의가 열렸고, 주고받은 전화와 e메일은 셀 수도 없다. 논란이 격렬하다보니 한 장을 2~3년씩 수정하기도 했다. 어떤 용어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 관계에 대해 ‘조공-책봉’이라고 쓸 것인가, ‘책봉-조공’이라고 쓸 것인가를 두고도 의견교환이 치열했다. 전자는 중국에 대한 조선의 종속 이미지가, 후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질서 속에서 호혜적 관계를 맺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결국 책에는 ‘책봉-조공’이라고 쓰여졌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임진왜란’은 ‘임진전쟁’으로 표기됐다.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중국, 일본에서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는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를 넘은 동아시아 통사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신주백 교수는 “우리의 원대한 미래를 위해 만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학문적인 의견 차이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며 “<동아시아 근현대사>가 올바른 역사 인식, 공동의 역사 인식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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