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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우의 새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

송고시간2012-06-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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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우의 새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숲의 외로움이 나를 그에게 데려가리/구슬픈 풀벌레 소리 여울물 소리가/나를 그에게 데려가리/…(중략)…/풀 한 포기 없는 빈 골짜기에서라도/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끝 모르는 숲의 외로움을 따라서 나는/그에게 가리"('새들의 슬픔이 나를 데려가리' 중)

양성우 씨의 시를 음미하노라면 왠지 애련한 느낌이 든다. 애달픈 듯 서럽고, 따뜻한 듯 포근하다. 고독과 상실의 울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가슴 깊이 품고자 하는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투쟁과 자유의지의 시인으로 알려진 양씨가 열네 번째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실천문학사)를 냈다. 기존의 시집 '겨울공화국'에서 알 수 있는 바처럼 40여 년 동안 투사적 이미지로 한국시단에 각인됐던 그가 서정성 가득한 시편들로 새 시집을 엮은 것.

한때 역사의 천장을 쩡쩡 울렸던 그의 시는 이제 가슴 깊은 데로 찬찬히 스며들어가며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차라리 더 큰 울림을 낳는다고 할까. 거기선 존재의 고독이 산중 수도승처럼 결가부좌를 틀고 있다.

"나는 바람일까 먼지일까 지푸라기일까/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일까/사람이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선한 흔적을 남겨야지/그것이 비록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일지라도"('물은 숨어서 홀로' 중)

추천사를 쓴 시인 신경림 씨는 "양성우 시를 관류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한(恨)"이라고 말한다. 이 한이 그만의 독특한 가락을 얻는 데서 양씨의 시는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에 민중가요로 애창됐던 그의 작품이 나타난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의 치열한 아픔과 외침도 이번 작품집에서 들려온다. 다만 시간의 흐름 속에 깊은맛으로 숙성돼 있을 뿐. 시인은 '봄비'에서 "하염없이 비가 내리네/지난날 내가 군인들의 총부리에 떠밀려서 광주감옥에/오래 갇혔을 때/면회도 안 시켜주는 감옥 앞에 날마다 오셔서/담장을 주먹으로 때리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우시던/어머니의 눈물같은 비"라고 서럽게 노래한다.

그렇다. 시인은 존재의 근원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 상실을 아파하며 오늘도 구불구불 비좁은 인생길의 뒷골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아무리 지우려고 몸부림쳐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남포리' 중)을 그리워하고, "비탈에 분홍꽃잎 흐드러지고 왕소나무 구부정"('산 하나' 중)한 고향마을을 가고자 한다.

애타는 그리움의 애원성은 '하얀 강'에서도 절절하게 메아리친다. 여기서 만나고자 하는 '너'는 결국 '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평생을 살아도 정작 '나'를 만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을 헤매는 일이 수두룩해서다.

"하얀 강을 건너서/너에게 가리/노래가 되어 꿈이 되어 너에게 가리/두꺼운 얼음을 밟고 눈밭을 지나서/붉은 가슴 하나로 너를 만나리/목이 쉬도록 너의 이름을/부르고 또 부르며 너에게 가리/새들도 안 오는 길/한낮에도 고요한 언 강을 건너서/올 때처럼 혼자서 너에게 가리/하얀 강을 건너서 너에게 가리/송곳 같은 바람 끝에 내 몸이 부서지고/으스러져도"('하얀 강' 전문)

양성우의 새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 - 2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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