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중독 사회와 소비형 여행문화는 동전의 양면… 함께 해결할 문제”

백승찬·사진 김창길 기자

‘개념여행’ 펴낸 여행기획자 정란수

많은 이들에게 즐거우려고 여행갔다가 불쾌하게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름휴가 여행에선 교통 체증과 바가지요금, 큰 맘먹고 떠난 해외 패키지여행에선 이런저런 옵션과 강매에 가까운 쇼핑, 동료들과 떠난 엠티에선 고주망태. ‘여행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넘어가기엔 어딘지 찜찜하다.

여행기획자 정란수씨(34·사진)는 ‘개념 있게 여행하자’고 제안한다. <개념여행>(시대의창)은 ‘풍류’가 아니라 ‘소비’가 된 현대 한국인의 여행 문화를 돌아보고, 그 원인과 대안을 살핀다.

그가 보기에 여행은 여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 문화가 뒤틀린 것은 노동에 중독돼 제대로 쉬고 놀지 못하는 한국인의 삶과 관련이 있다. 2002년 금융권을 중심으로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여가 시간은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질적으로는 변화하지 않았다. 지금도 정시에 퇴근하려고 하면 “집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는 상사가 부지기수다.

“노동중독 사회와 소비형 여행문화는 동전의 양면… 함께 해결할 문제”

“ ‘노동중독’과 여행문화 개선은 함께 해결할 문제입니다. 야근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휴가 내고 여행가는 건 쉽지 않죠. 중소기업은 대기업 눈치 보느라 대기업이 쉬는 여름에 같이 쉽니다. 당연히 7~8월 성수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관광객들은 혼잡하고 비싼 관광지가 불만이다. 한철에만 관광객이 몰리니 관광지 입장에서도 투자 대비 수익 창출 기간이 짧다. 어정쩡하게 투자된 관광지는 여름엔 좁고 비수기엔 한산하다. 성수기에만 채용되는 아르바이트생은 체계적으로 시설을 관리하고 관광객을 돕기 어렵다. 휴가가 조금만 분산돼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만, 노동중독 사회에선 평상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정란수씨는 관광을 토건 정책의 들러리로 세우는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운송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대운하 사업을 내걸었다가, 뒷날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추진했다. 이 사업에 운송 비용 절감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4대강 주변에 외국인 카지노나 테마파크를 건설해 관광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관광을 대규모 토건 사업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한 건 새만금 사업 등을 추진한 이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정부들은 개발을 하면서 환경 논리와 부딪히면 관광 논리로 풀려 했다”며 “부존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다보니 관광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쉽고 잘 먹히는 논리를 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여행은 가능하다”고 했다. 요즘 자주 들을 수 있는 ‘생태관광’ ‘공정여행’ 등이 그 사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라는 말을 인용해 “생각하지 않는 관광은 악”이라고도 했다.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고 밭에서 고구마를 캔 뒤 농가에서 잠을 자는 농촌관광은 지역사회와의 공생 가능성을 연다. 대형 체인 리조트 대신 현지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리조트를 이용하고 현지 일꾼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공정여행은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모든 여행자가 하루아침에 관행을 바꿔 불편을 감수하고 ‘개념여행’을 떠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바꾸면 못할 것이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금강산 관광 역시 정씨가 제시한 ‘개념여행’의 하나다. 대학에서 관광학을 공부한 그의 첫 직장은 현대백화점 금강산관광사업부였다.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지금까지도 재개될 기약이 없다. 그는 “굉장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물적 교류뿐 아니라 인적 교류도 중요합니다. 인적 교류가 없으니까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터져도 해결할 수 있는 라인이 없죠. 금강산 관광이 진행될 때도 두 차례의 서해교전이 있었지만, 동쪽을 통해 연결이 지속되니 해결이 됐어요.”

사실 정란수씨는 “집 밖으로 나다니는 것도 귀찮게” 여기는 성격이었다. 대학의 사회과학부에 입학해 학회 활동을 했는데, 그 학회가 우연히도 관광학과 소속이었다. 결국 관광학을 전공했고 어느덧 지금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서점의 ‘여행’ 코너에서 <개념여행>을 집어든다면, 여행지 한 곳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책 내용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는 “ ‘맛있는 커피’는 없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커피’가 있듯이, 여행지도 추천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개인 취향으로는 인도 여행, 그리고 크루즈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인도는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크루즈 여행은 타 문화와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크루즈 여행은 흔히 비싸다고 여겨지지만, 비수기라면 웬만한 해외 패키지여행보다 싸다고 그는 귀띔했다.

정란수씨는 언젠가는 비무장지대(DMZ) 여행 루트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민통선까지만 갈 수 있지만, 비무장지대 안까지 들어가면 분단의 현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내놓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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