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녹록하지 않은 농사, 하지만 생명순환을 배운 10년

김종목 기자

▲삼킨 꿈…한승오 지음 | 강 | 183쪽 | 1만2000원

저자는 농사꾼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세월을 논밭에서 노동했다. 그래도 “매년 돌아오는 농사는 처음처럼 서툴기만”하고, “내가 모를 심는지, 수렁이 나를 심는지 알 수 없는” 농사꾼이다. 이 농사꾼이 세 번째 산문집을 냈다. 저자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통신 수리와 출판 일을 하다 10년 전 귀농했다. 그래서 부제가 ‘땅에서 배운 십년’이다.

저자의 글은 짧고 간결한데도 깊은 맛이 있다. 우리말법에 충실한 문장들을 운문의 형식에 자연스레 녹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에 담긴 농촌의 삶과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책과 삶]녹록하지 않은 농사, 하지만 생명순환을 배운 10년

농촌의 노동은 고되다. “물속에서 흐느적대다 잔디처럼 머리를 내민” 피 때문에 아내와 함께 한여름 내내 논에서 피사리(피를 뽑아내는 일)를 한다. 5년은 농사짓게 해주겠다던 땅주인은 부부가 피를 다 뽑아놓은 그 자리에 내년부터 농사를 짓겠다고 말한다. “남의 땅 부쳐 먹는 소작인 주제에 그 땅에 땀을 쏟고 정을” 준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농사일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불가항력의 상황을 맞닥뜨리기 일쑤다. 고라니가 못자리를 망가뜨릴까 걱정하는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에게 “고라니가 못자리를 지나다니지 않게” 간절한 기도를 해달라는 것뿐이다.

풍성한 수확의 전망은 곧잘 꺾인다. “한 달 동안 계속된 여름비에 탄저병이 극성을 부렸다. 고추밭에서는 고추 열매가 썩어 가는 냄새만 가득했다.” 노동의 결실을 맺지 못한 저자는 “허무 또한 농사의 열매이겠지… 마치 삶이 숙명처럼 허무를 껴안고 있듯이”라며 스스로를 애써 위안한다.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가을비도 난관이다. 초가을 많은 비가 쏟아진 다음날 벼들은 일자로 눕는다. 저자는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은 가을을 절망하는 체념의 노동”이란 것을 깨닫는다.

농촌과 주민들의 삶은 어떤가. 농촌은 한국에서 ‘배제된 곳’이다. 국익과 무역을 위해 우선 희생되는 곳이다. 농민들의 고통과 애환은 관심 밖의 사항이 된 지 오래다.

농촌 사람들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심 좋은 역할을 맡은 소도구로만 등장한다.

저자가 묘사하는 이웃 농민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처럼 마냥 너털웃음을 뱉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칠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경운기 짐칸 한편에는 비료 포대를 가득” 싣고, “종이박스, 녹슨 빨랫대, 낡은 밥통, 찌그러진 냄비”를 위태롭게 수레에 실은 예순 살 남짓한 노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끌고 다닌다. 이런 모습을 신문이나 방송에선 보기 쉽지 않다. 언론은 닭들과 소들이 역병으로 죽어나야 농촌을 찾는다.

저자는 구제역 사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산 사람들 심장을 찢는 듯한 짐승 울음소리가 두껍게 덮은 흙을 달구질하는 사람들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생매장된 소들의 울음소리는 땅에 묻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허연 횟가루를 뿌리고 굵은 쇠사슬을 엮고 가시철조망을 두르고 모든 산 것들의 출입을 막”으며 ‘저들의 소’를 살리려고 했다.

농민들은 땅에 애착을 가진다. 고집스럽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집을 찾아와, 혼자 사는 늙은 어미에게 행패 부리는 자식”에게 늙은 어미가 결코 내어줄 수 없는 게 ‘밭 한쪽’이다. 도시에서 자가용 타고 온 아들과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등을 돌린 노인은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돈이 생기면 땅에 묻어야 해. 그러면 어떤 자식도 못 건드려! 땅밖에 없어, 땅밖에 없는 거야….”

저자는 땅에서 생명순환의 도리를 배운다.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면서부터는 거름의 양이 확 줄어”들어 거름은 턱없이 모자랐다. “사람의 똥오줌 앞에는 두 갈래 길밖에 없다. 땅과 만날 때 비로소 똥오줌은 땅을 살리는 거름이” 되고, 바다로 흘러들 때 “똥오줌은 세상을 죽이는 독이 되고” 만다.

저자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그가 부여잡고 가는 것은 생명이다. “볍씨 한 알 속에 쌓인 생명의 깊이를 어떻게 헤아릴까” “과연 저 희망이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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