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세상 밑바닥을 돌며 권력과 가해 고발한 ‘급진적 비관주의자’ 오웰

김종목 기자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고세훈 지음 | 한길사 | 632쪽 | 2만4000원

고세훈 교수(고려대 공공행정학부)는 조지 오웰(1903~1950)이 쓴 소설·에세이·칼럼·일기·편지 등 1차 자료와 오웰에 관한 전기·논문·비평 등 방대한 2차 자료를 섭렵해 ‘20세기 위대한 정치작가’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고 교수는 “책의 전편에선 생애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쓰기를 일별했고, 후반부는 사상과 작가로서 글쓰기 태도를 집중적으로, 가능하면 체계적으로 조명해보려 했다”고 한다.

고 교수는 ‘오웰의 작가적 삶 전체를 꿰뚫는 삼각편대’인 사상·행동·창작에 주목했다. 그가 ‘삼각편대’에서 우선 다루는 것은 내부비판의 실천과 사상이다.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에서 전체주의를 고발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도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영국 좌파의 이중성을 신랄히 비판했다. “오웰의 비판의 날이 가장 벼려졌을 때 그것은 대체로 좌파지식인을 겨누”었기 때문에 좌파로부터 반사회주의자로 매도당할 때가 많았다. 고 교수는 ‘내부비판자 오웰’을 두고 “전체주의의 악몽이 짓누르는 시절에 현실사회주의마저 패권주의로 변질되고 거기에 따라 지식인들이 요동하는 세월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책과 삶]세상 밑바닥을 돌며 권력과 가해 고발한 ‘급진적 비관주의자’ 오웰

내부 비판자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스페인 내전이다. 오웰은 “보통사람의 ‘존엄’을 위해 싸우기로 작정”하고 1936년 12월 스페인으로 갔다. 오웰은 전장에서 파시즘과 공화주의의 싸움이 아니라, 반파시스트 좌파 진영 내부의 갈등과 공산주의자들의 적나라한 패권주의 즉 “스페인에서의 진정한 혁명운동이 스탈린에 의해 완전히 질식”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특히 1939년 8월, 독일이 전쟁에 들어가면 소련은 중립을 지킨다는 내용으로 체결된 독소 불가침 조약은 전체주의에 대한 오웰의 신념을 강화했다.

오웰은 애국주의를 선택하면서 히틀러의 독일이라는 최악에 맞선 체임벌린의 영국이라는 차악을 방어하는 게 양심상 옳다고 생각했다.

오웰은 트로츠키 계열의 독립노동당을 떠나면서 “정서적으로, 나는 명백한 ‘좌파’이다. 그러나 작가는 정당정치에서 자유로울 때만이 진정으로 정직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지식사회는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오웰은 1944년 2월 <동물농장>을 탈고했지만, 영미의 수많은 출판사들은 스탈린 체제의 실상을 노골적으로 풍자한 이 소설의 출판을 거부했다. 소련이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 중이란 게 이유였다.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스탈린 비판은 곧 나치를 돕는 것이라는 논리와 독재자를 도발하려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팽배했다.

1943년 11월 이후 영국 노동당 기관지 ‘트리뷴’ 문예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오웰의 기자 신분증. 스페인 내전과 같은 현장을 누비며 글을 쓴 오웰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1943년 11월 이후 영국 노동당 기관지 ‘트리뷴’ 문예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오웰의 기자 신분증. 스페인 내전과 같은 현장을 누비며 글을 쓴 오웰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예고한 소설 <1984>도 연장선에 있다. 오웰은 “사회주의나 (내가 지지한) 영국노동당에 대한 공격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앙집중적 경제가 빠지기 쉽고 또 이미 공산주의와 파시즘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된 도착(倒錯)들에 대한 폭로”라고 했지만, 이 소설 또한 좌파로부터 공격당했다.

고 교수는 “오웰이 혁명 이후의 실패담을 냉소와 풍자로 펼쳐낼 수 있었던 것도 혁명 자체를 부인했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문제는 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였고 애초에 ‘잘못된 주체’가 혁명을 주도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오웰이 염두에 둔 사회주의는 평등 개념을 핵으로 하는 보통사람의 사회주의, 곧 민주사회주의”라고 했다. 오웰은 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토지·탄광·철도·공익산업·은행의 국유화 같은 급진적 경제개혁을 주장했다. 앞서 런던에서 방위군에 합류할 때 “사회주의자들이 방위군에 합류하여 그것을 민주적 게릴라 세력으로 전환시키자”고 촉구할 정도로 사회주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 교수는 학창시절과 버마에서의 제국경찰 시절을 하나의 ‘원체험’으로서 돌아본다. 8살 때 입학한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는 암기 위주의 강압적·반지성적 교육방침으로 “물리적으로 억압적이고 지적으로 퇴락”한 곳이었다.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일하며 ‘평등 없는 친밀성’의 위선을 간파했다. 오웰은 이것이 ‘열등한 인종’에 대한 무제한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잇는 연결고리로 봤다. 억압자와 피억업자, 가해와 피해의 관계에 대한 분석틀은 당대 자본주의 사회 비판으로 연결됐다. 영국의 빈민은 ‘백인 원주민’이었던 것이다.

오웰은 세상의 밑바닥을 의식적으로 돌아다닌 작가였다. 밑바닥의 ‘억압받는 자들’과 동일시하려 노력했다. 오웰은 권력(자)과 가해(자)를 고발하고, 비판했다. 또 그만큼 급진적이었다. 두 계급의 타협은 거의 언제나 배반으로 끝났다는 관찰에 따라 계급협력도 불신했다. “우리는 선한 사회를 건설하든가 아니면 악을 지속해야 한다”는 오웰의 말은 혁명의 필요성을 다그친 것이다.

오웰의 생애와 저작을 관통하는 철학적 입장을 ‘급진적 비관주의’로 규정한 고 교수는 “거기에는 인류의 암울한 전망에 대한 깊은 사색과 기존 체제의 구조적 변화와 보통사람의 가치의 복원에 대한 염원뿐 아니라 ‘피해/가해자’의 일원으로서 한 지식인의 ‘수치/죄의식’에 대한 속죄와 해원의 방식으로서 내려감의 체험, 그리고 모진 글쓰기의 자기규율이 모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주와 문헌만 75쪽이다.

영국노동당정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 교수는 오웰을 둘러싼 영국 안팎의 시대상, 사상사와 함께 당대비평의 핵심과 맥락을 본문 곳곳에서 풀어냈다. 오웰의 저작 여러 권을 직접 읽는 것 못지않은 오웰 읽기를 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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