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이형’ 속에 감춰진 자연의 비밀… 팔다리 없으면 기형? 그렇다면 뱀은?

고영득 기자

자연의 농담…마크 S 블럼버그 지음·김아림 옮김 | 알마 | 285쪽 | 1만5000원

한강에서 홀로 떠다녔다. 낚시꾼조차 외면했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에서다. 본의 아니게 흉측스러운 외모로 태어나더니 서울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괴물’이 됐다. 영화 밖을 나와 보자. 올해만 들어서도 중국에선 코와 입이 하나씩 더 달린 돼지가, 일본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에 귀 없는 토끼가 태어났고, 나이지리아에선 반인반수 양이 나타나 해외토픽난을 장식했다.

‘기형’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소수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동족이 명확한 선을 그어 구분하러 들기 때문이다. ‘왕따’만 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되면서 충격, 공포, 혐오 등의 단어가 뒤따른다. 인간도 다를 바 없다. 고대 로마인들은 기형아가 태어나면 익사시켰다고 한다. ‘기형’은 과연 불건전하고 부적절한, 자연의 실수일까.

[책과 삶]‘이형’ 속에 감춰진 자연의 비밀… 팔다리 없으면 기형? 그렇다면 뱀은?

‘기형과 괴물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진화의 막다른 끝으로 치부되는 이형(異形) 인간과 동물들의 다양성을 좇으며 진화와 발생의 비밀을 풀어낸다. 몸이 맞붙은 쌍둥이 자매와 두 다리로 걷는 염소와 개, 눈이 하나만 달린 아기,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양성인간까지 자연에 존재하는 ‘별난 대표선수’들이 등장한다. 국제발생심리학회 회장이자 아이오와 대학 교수인 저자는 이 선수들이 개체와 집단, 신체와 행동 속의 감춰진 ‘가능성’과 ‘과정’을 드러낸다고 본다. ‘이형’은 발생과 진화의 비밀을 풀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찰스 다윈과 윌리엄 베이트슨의 시각을 빌려 이형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형적인 개체나 기형적인 모든 종이 어떻게 움직이고 서로 작용하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보기에 이형은 생김새가 복잡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완벽하게 자연의 일부다. 나아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다.

책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인간과 연준모치를 비교한 그림처럼 다양한 이형 생명체들의 스케치를 담고 있다. 유연관계가 먼 종들 간의 형태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는 오래된 발생 메커니즘의 작용을 증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과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뱀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종에서는 이형으로 간주되는 몸의 형태가 다른 종에서는 새롭게 나타난 특징이 될 수도 있다.

20세기 초 동물학자 해리스 호손 와일더의 논문에서는 외눈증에서 정상적 형태를 거쳐 두얼굴증에 이르는 계열을 볼 수 있다. 이 계열의 한쪽 끝에는 눈이 하나도 없는 외눈증 기형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얼굴이 하나 더 있는 두얼굴증 기형이 있다. 와일더는 이 두 계열에 ‘코스모비아(cosmobia)’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로 ‘질서정연한 생명체들’을 뜻한다. 와일더는 외눈증과 두얼굴증을 서로 구별되는 증상이 아니라 연속적인 스펙트럼의 양 끝에 있는 한 가지 증상의 서로 다른 국면으로 본 것이다. 그 중간쯤에 “다양성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정상 영역이 자리잡고 있다. 와일더는 외눈증과 두얼굴증이 기형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들은 자기 종의 통상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의미에서는 확실히 비정상적이지만 기형은 아니다.”

앞다리의 기형이 심한 개가 뒷다리만으로 걸을 수도 뛸 수도 있다. 앞다리가 없지만 두 개의 뒷다리로 걷고 뛰어오르는 법을 배운 야생 비비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사실들은 “인류에게 직립보행의 진화가 몇몇 인류학자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진화상의 큰 도약도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자연의 실수가 아니라 과학적 영감과 진보를 가로막는 우리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바로잡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을 버린다면 인류는 환영으로 가득 찬 여정을 희망 없이 표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도 한다.

이쯤 되면 다시 책 제목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기형인 생명체들은 라틴어로 ‘자연의 농담’이라 불렸다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관습적 개념을 포기하고 생명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이 교차된다.

저자가 컬트 영화 <프릭스>(1932년)에 나온 조니 에크의 사연을 소개한 것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이 생물학의 영역을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리가 없이 태어난 에크는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유명인이었으나 형과 같이 살던 집에 강도가 든 이후 은둔하게 됐다. 강도들은 늙고 쇠약해진 에크를 묶어놓고 귀중품을 훔쳐갔다. 사건 후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한 에크는 4년간 주변과 완벽하게 단절하며 살다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괴물을 구경하고 싶다면 나처럼 그저 창문 밖을 내다보라.”

겉보다 속이 기형인 괴물이 더 무섭다고 에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 괴물’ 역시 은닉과 강요가 주특기인 그 괴물들이 낳았으니 말이다. 겉 희고 속 검은 백로는 오늘도 까마귀가 검다며 비웃고 있을 터. 모든 곳에 괴물이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에 밑줄을 긋게 된다. 우리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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