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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ave A Book Night’ 책 보다 잠드소서 책과 침대로 만든 도심 방공호

박찬은 기자
입력 : 
2017-06-14 15: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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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주문한 뒤 책장 속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커튼을 치고 나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드러눕게 된다. 책을 편다. 몇 페이지나 읽었을까, 스르륵 잠이 드는 나를 발견한다. 서점에서 누워서 책을 보고 싶을 때, 읽다가 이대로 잠들고 싶을 때, 침대가 있는 서점은 매우 치명적인 유혹이다. 수천 권의 책과 함께 잠들 수 있는 일본의 숙박형 서점 ‘Book And Bed tokyo(bnbt)’. 이곳의 카피는 ‘Have A Book Night’이다. 홍대에 새로 들어선 세렌북피티의 경우 잠을 잘 수 있는 4개의 침대가 책장 속에 숨겨져 있다. 책 보다 잠들 수 있는 책방, 지친 현대인을 위한 책과 잠의 방공호들을 소개한다.

▶Have A Book Night~

▷일본의 숙박형 서점 북앤베드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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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추면 스피커에서 안내 멘트가 나오며 문이 열린다. 천장에 매달린 책들, 서가에 자리한 침대와 한쪽의 바가 눈에 들어온다. 수천 권의 책 속에 파묻혀서 자는, ‘애서가들의 천국’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트위터에서 무척 핫했던 북앤베드도쿄(BOOK&BED TOKYO)는 일종의 ‘숙박형 서점’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컬러인 파란색 소파가 공간을 나누는데, 호스텔을 가로지르는 크고 긴 책장은 5000~7000여 권의 책을 보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옆으로는 숙박객을 위한 침대가 되기도 한다. 얼마전엔 3호점인 후쿠오카점에서 한국인을 뽑는다는 소식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북앤베드는 현재, 도쿄점을 필두로 교토, 후쿠오카에서 운영되고 있는 호스텔이다. 마치 캡슐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책장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커튼을 닫고 독립된 공간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 수 있다. 이곳을 ‘호스텔’로 분류하는 이유는 숙박객을 맞는 리셉션 데스크가 입구에 벨을 갖춘 채 손님을 맞고, 전기 주전자와 오븐 레인지 외에 마치 호텔의 욕실처럼 24시간 샤워시설도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악명 높은 숙박비의 도시’ 도쿄에서 4만원도 안 되는 돈에 가능하다. 리뉴얼을 마친 채 지난 1월 도쿄 도시마구에 재개장한 북앤베드는 10가지 알코올 음료를 제공하는 바를 오픈했다. Book, Bed에 이어 Beer까지 합세한 것. 1층과 2층으로 나눠진 침대의 개수는 모두 50여 개로 Bookshelf(스탠다드 형, 4800엔)와 Bunk(컴팩트 사이즈 베드, 3800엔) 두 가지 타입 중 선택 가능하다. 이곳의 사다리는 2층에 있는 책을 꺼낼 수 있는 도구이자,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출입구가 된다. ▶힙한 독자들을 불러 모으는 핫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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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높은 숙박비는 캡슐호텔 성황을 만들기도 했지만, 깔끔한 장소를 원하는 여성 여행자들이나 젊은 학생층에는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지난 2015년 도쿄 이케부쿠로에 처음 오픈, 교토의 카모가와 강변에 이어 최근 후쿠오카 파르코에도 오픈한 북앤베드는 이들을 흡수해, 지천에 있는 집을 두고서도 일부러 숙박을 하러 오는 젊은이들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숙박이 아닌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반나절 머무는 데이타임은 시간당 500엔에 침대 없이 지낼 수 있다. Free Wifi가 있으며, 체크인은 오후 4시~11시까지, 체크아웃은 익일 오전 11시다. 이케부쿠로 역 C8로 나오면 1분 안에 도착한다. 드라이기는 대여 가능하고 다이얼 락커도 있다. 카드 결제만 가능하며 금, 토, 공휴일에는 요금이 올라간다. 문 닫은 서점에서 파자마를 입은 채 책으로 둘러 쌓인 서가에 누워 잠드는 기분은 어떨까. ‘숙면을 위한 완벽한 그 무엇은 여기에 없습니다. 편안한 매트리스도, 푹신한 솜털 베개와 가볍고 따뜻한 이불도 없습니다. 책(또는 만화책)을 읽을 때 저희가 제공하는 것은 ‘경험’입니다. 적어도 한번은 모두와 나눌 수 있는, 더 없이 행복한 수면이죠. 이미 새벽 2시지만 당신은 졸리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조금만 더’ 책을 읽자고 느낄 겁니다(Book And Bed is “an accommodation bookshop”. The perfect setting for a good nights sleep is something you will not find here.There are no comfortable mattresses, fluffy pillows nor lightweight and warm down duvets. What we do offer is an experience while reading a book (or comic book). An experience shared by everyone at least once : the blissful “instant of falling asleep”. It is already 2 am but you think just a little more... with heavy drooping eye lids you continue reading only to realize you have fallen asleep).”(북앤베드도쿄 홈페이지 소개글) 주소 1-17-7, Lumiere buillding 7th floor, Nishi Ikebukuro, Toshima-ku Tokyo, Japan 171-0021

▶책에 둘러싸여 잠자는 ‘북 호스텔’ 판타지

이미 일본 내 세 군데에 지점을 마련해놓고 있는 북앤베드도쿄. 교토점과 후쿠오카점은 도쿄점과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교토점에는 스탠다드, 컴팩트 외에 카모가와 강변을 바라보며 잘 수 있는 리버뷰 타입 한 가지가 더 추가돼 있다(치매는 3타입 총 20개). 요금은 4800엔으로, 오후 4시 입실 익일 11시 퇴실이며, 교토점은 기온 시조역 7번 출구에서 1분 거리다. 북앤베드도쿄 후쿠오카점에는 스탠다드와 더블 총 28개의 침대가 있으며 다른 지점과 다르게 ‘Bunk’ 섹션에 더블 베드가 마련돼 있다. 가격은 6800엔으로 개인 독서등, 행어와 슬리퍼, 락커와 콘센트 등이 마련돼 있다. 북앤베드도쿄 후쿠오카점은 텐진역 주변 뉴파르코 빌딩 6층에 위치해 있다. 패셔너블한 인테리어와 저렴한 가격, 깔끔하고 위생적인 해외의 도미토리형 게스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색다른 숙소’의 경험을 원하는 여행객과 북 러버들을 유혹하고 있다. 변경사항이나 각종 행사 프로그램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꼭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약 15000원 정도만 내면 책에 파묻혀 반나절 휴식을 취하는 ‘이색 경험’이 가능하다.

▶책장 속 침대에서 마시는 맥주

▷합정동 세렌북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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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영화 <세렌디피티>. 각자의 연인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다가 우연히 사랑에 빠진 조나단(존 쿠삭)과 사라(케이트 베킨세일)는 바로 연락처를 교환하는 대신 오래된 책 페이지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다. 둘은 이를 헌책방에 판 뒤 운명의 이끌림에 따라 7년 후 서로를 찾는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 대표가 문을 연 홍대 당인리발전소 근처의 ‘세렌북피티’는 대로변에 설치된 노란색 대문자 ‘READ’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천장엔 페이지가 접힌 채 펼쳐진 책들이 새처럼 매달려 있고, 콘크리트 벽엔 ‘Serendipity In Your Book’이라는 네온사인 문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뜻밖의 재미(기쁨)’를 뜻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북(Book)’을 집어넣은 작명법이 귀엽다. 침대가 있는 책방 ‘세렌북피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 책방 주인을 미카미 엔의 인기 추리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의 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에 빗대 쓴 한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수줍음이 많은 예쁜 처자일 뿐인 고서점 주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책에 관한 한 누구보다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는 수다를 발산하는 독특한 캐릭터다. 평생을 책방을 운영한 노인들이 들려줄 만한 희귀본과 출판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긴 생머리를 가진 청순한 젊은 처자에게서 듣는 의외의 상황이 재미나다.”(2017/03/27 오마이뉴스 박균호 ‘이 동네 책방에 오면 네 번 놀랍니다’) “이곳에서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세렌디피티,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을 얻길 바란다”고 말하는 주인 김세나 씨는 직접 코너명을 정하고 책을 분류해 진열한다. 그녀의 손끝에서 세심한 취향이 묻어난다. ‘과학이 따분하다는 편견을 버려’라는 코너에는 <김대식의 인간vs기계>(김대식), <인류의 기원>(이상희·윤신영) 등이, ‘나 오늘 센치해’ 코너에는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양창순)와 <밤이 선생이다>(황현산)<어디까지나 개인적인>(임경선) 등이 꽂혀 있다. ▶슬리퍼 신고 오르는 책장 속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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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링 글자 자체를 거대한 책장으로 만든 ‘READ’ 선반에 이어 책장 속 침대가 눈에 띈다. 책장에는 책과 함께 맥주가 진열돼 있고, 서가 7~8개에 걸쳐 사이사이 침대가 4개 들어가 있다. 계산을 끝내니 슬리퍼를 내어준다. 사다리를 타고 2층 침대로 들어가보니 깨끗한 시트를 갖춘 싱글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계산을 마친 책을 들고 사다리를 올라 커튼을 치고 누우니 미니 스탠드와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맥주 잔은 책이나 매트리스에 엎지르지 않도록 뚜껑을 덮어 빨대를 꽂는 식으로 자체 제작됐다. 푹신한 베개에 반쯤 기댄 채 주문한 하루키IPA를 들이마시며 책장을 넘긴다. 커튼 밖으로 손님들의 인기척이 들렸지만 이 안에선 눕든 엎드리든 그들에게 보일 염려 없이 잠깐의 낮잠을 즐길 수 있다. 생맥주의 이름은 에쿠니 바이젠과 하루키IPA. “맥덕후들이 가장 좋아한다”며 내게 추천한 하루키IPA는 씁쓸하면서도 강렬했다. 온순한 과일향의 밀맥주 에쿠니 바이젠에 비하면 좀더 뒷맛이 개운하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화장실을 찾지만, 보이지가 않는다. “책장 문을 열면 있어요.” 마치 첩보집단의 요새처럼 책장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이 나온다. 침대(북 베드Book Bed) 이용권은 1시간에 9900원, 2시간에 1만4900원으로 아메리카노나 유기농 티 포함 가격이다. 북 베드의 경우 장시간 이용도 가능하지만 책방은 밤 11시까지 운영되므로 이곳을 호텔 삼아 잘 수는 없다는 점, 명심하자. 아메리카노는 2900원으로, 출출한 손님들을 위해서 땅콩버터 오징어와 피자 브레드, 나쵸 등을 판매한다. 50여 가지 세계맥주를 도매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점도 ‘책맥’ 덕후들을 부르는 이유. 맥주는 사서 가져갈 수도 있으며, 카운터 안 서가에 있는 책은 대여 가능하다. 책은 정가의 10%를 포인트로 적립해주며, 1만 포인트부터 음료(병 음료와 맥주 제외)나 북 베드 이용권 구매 시 사용 가능하다. ‘세렌북피티 인생 마끼아또’ ‘벚꽃 라떼. 메뉴 작명센스에서도 주인 양반의 성격이 드러난다. 평일 2시까지 진행되는 일명 ‘밥은 먹고 다니니 Set(아메리카노+베이글(or 머핀))’는 6800원에 판매한다. 책의 분류와 메뉴 작명센스까지 모두 서점 사장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우연한 기쁨을 발견하는 곳, 책이 있는 세렌북피티는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34(합정동) 1층

▶하늘이 보이는 침대에 누워 책 읽기

▷해방촌 철든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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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애가 하는 제일 조용하고 만만한 책방’. 하지만 길게 늘어선 줄과 몇 시간 기다려 사인을 받았다는 선험자들을 보니 조용하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해방촌 핫플레이스’ 철든책방은 방송인 노홍철이 이태원 해방촌 골목길에 차린 책방이다. 초행길이라면 찾아가기가 어렵다. 신흥시장 옆으로 구비구비 걸어가면 골목길 끝에 만나게 되는 곳으로, 공구점 사장님께 길을 물어 겨우 도착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콘크리트와 벽돌로 마감한 빈티지 느낌의 건물로 들어가면 ‘철든책방’이라고 적힌 서점이 나타난다. “좋아! 가는 거야~”라고 외치는 듯한 노홍철의 브론즈 컬러 두상이 문간 위에 얹혀 있다면 제대로 찾아온 거다. 한쪽 벽에는 컬러풀한 단행본과 시집이 꽂혀 있고, 다른 선반에는 발랄한 이름의 독립출판물과 함께 ‘딱 노홍철답네’ 싶은 의자들(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다), 나무로 조립한 책 진열대,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뿅!’ ‘좋아! 가는 거야!’ 등 그의 전매특허 유행어가 적힌 에코백과 직접 디자인한 다이어리 속지들이 놓여 있다. 계산도 노홍철이 직접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그가 길게 줄선 손님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기 때문이다. 사인 인파를 뚫고 2층으로 올라가니 두둥, 하얀 시트에 컬러풀한 베개가 얹힌 침대가 보인다. 하얀 시트가 덮여 있는 싱글 침대 2개 위에 쿠션이 놓여 있고, 한두 명의 손님들이 그 위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운 좋게 침대에 누우니 천장에 달린 삼각 창문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옆 방에 가니 마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나 침대기차 칸처럼 1~2층으로 나뉘어진 침대가 또 등장한다. 책을 읽다 잠이 들 것만 같다.

▶“눕고 싶으면 누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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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겸 전시장이 있는 지하와 서점 공간 1층, 침대가 있는 2층, 옥상으로 구성된 철든책방에서는 맥주도 판매한다. 크래프트 브루어리 더부스와 콜라보해 직접 만들었다는 수제 맥주에는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글자가 진지한 궁서체로 적혀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해먹과 테이블 사이로 남산타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치 고해소를 연상시키는 팔각의 거울방이나 홍철도사에게 점을 봐야 할 것 같은 타로카드와 수정구슬의 방(긍정과 위로의 한마디를 적어갈 수 있다) 등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발랄한 공간들이 즐비하다. 머릿속이 산란해진 찰나, 선반 위에 적힌 글자들로 인해 갑자기서점 분위기는 진지 모드로 바뀐다. ‘여행은 당신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그 다음 당신을 이야기꾼으로 만든다.’ “책을 싫어했지만 사건 이후 세계 여행을 다니며 많은 책을 접하게 됐고, 이후 책방을 열게 됐다”고 밝힌 노홍철은 책방의 모든 수익금을 기부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 한해 오픈하므로 인스타그램으로 오픈 유무를 미리 확인하자. 주소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99-8(용산동2가 1-92)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사진 세렌북피티, 북앤베드도쿄(http://bookandbedtokyo.com/), 철든책방]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2호 (17.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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