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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Book All Night | 황혼에서 새벽까지 심야책방을 갔다

박찬은 기자
입력 : 
2016-11-17 10:47:17
수정 : 
2016-11-21 16: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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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홀로 깨어 텍스트를 흡수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심야책방’이다.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서점이 문닫는 시간에 맞춰 책방에 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 요란한 화장을 한 바텐더와 귀찮은 대거리를 하지 않아도, 혼자 온 나를 심심하게 두지 않으려는 바 주인들은 걱정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한 권을 새벽까지 읽고 가도 괜찮은 곳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칵테일 얼음이 녹는 소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 시끄러운 사교와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술과 책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방공호’ 심야책방을 소개한다.

▶30년 된 동네책방의 ‘심야 북카페’ 변신…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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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생긴 상도동 대륙서점에서는 11월25일 심야책방이 열린다.
1987년에 문을 연 동작구 상도동의 대륙서점은 ‘참고서 전문 서점’에서 1년 전 ‘북카페’로 변신했다. 해방촌이나 홍대 방면에 새로 생긴 책방이 아니라, 주민들이 오가는 일명 성대골 골목길에 있는 ‘진짜 동네서점’이다. 대형서점의 습격 속에서도 동네 책방을 30년간 지켜온 양성훈, 남덕임 부부가 임대료조차 감당이 안돼 폐점을 마음 먹었던 지난해, 마침 상도동에 신혼집을 마련한 박일우, 오승희 씨가 서점을 넘겨 받는다. 하루 만에 책방을 인수하고, ‘설계비는 책으로 받겠다’고 밝힌 사회적 기업 블랭크 측의 리모델링과 편집디자이너 아내의 솜씨로 밝고 환한 대륙서점 시즌2가 시작됐다. 오는 25일 ‘심야서점’을 진행하는 대륙서점에 오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 샹그리아와 맥주, 칵테일이 종이 넘기는 소리 사이로 서브되고, 한편에선 알아서 커피를 따라 마신다. ‘가슴 뜨겁게 취하고 싶은 날, 술친구가 되어주는 책’, ‘새벽에 홀로 깨어 있고 싶을 때’ 등 직접 만든 코너명이 이채롭다. 1980년대에 생긴 서점이 ‘북카페 동네 사랑방’으로 계속 존속하고 있는 것도, 젊게 거듭나고 있는 것도 반갑다. 24시간 운영되는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이 성공적으로 개관하고, 심야책방을 처음 시작한 북티크는 논현점에 이어 서교점까지 심야책방을 도입했다. 연예인 노홍철부터 가수 요조, 대기업 입원까지 동네 책방을 내는 때 아닌 특수를 맞고 있는 지금, ‘심야책방’은 조금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도시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대륙서점 서울시 동작구 성대로40(상도동 256-41)/11:00~22:00(심야서점 11월25일 22:00~02:00) www.facebook.com/drbooks

▶취향 저격 코드, 심야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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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문을 여는 심야 책방, 술과 함께 하는 책맥. 기업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주인장의 개취(개인 취향)는 공통분모를 가진 손님을 이끄는 좋은 촉매제다. ‘심야책방’이 ‘경험 소비’를 원하는 고객들의 취향을 저격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대기업들도 관련 이벤트에 나섰다. 네이버는 매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모바일을 통해 신간 미리 보기 ‘모바일 심야책방’을 서비스한다. 전자책이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무료 체험판이 아닌, 당일 출판사 담당자가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포스팅해서 올린 글이다. 매일 밤 9시에 작가 소개 및 배경 설명 등과 함께 책의 내용을 올리고, 일요일 밤 9시에는 한 주간 가장 사랑 받은 책을 보여준다. 네이버 책문화팀 여지원 씨는 “심야책방을 진행한 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매출이 증가하는 등 출판업계의 긍정적 피드백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13~15일 교보문고 일산점에서는 60시간 연속 서점 문을 여는 ‘심야책방’ 이벤트가 열렸다. 20명을 초청해 서점 내에 미리 설치해둔 텐트 안에서 책을 읽는 1박2일 가족캠핑 코너였다. 교보문고 심야책방에서는 14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영화 <오베라는 남자>가 상영됐으며, 클래식 음악 공연과 함께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의 ‘서민적 글쓰기’ 북토크도 열렸다. 전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는 책 10%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심야책방 사진을 SNS에 올릴 경우 도서 구매티켓도 제공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도헌선 씨는 “향후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참여했던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앞으로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만원 내고 밤새 책 보는 ‘북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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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오롯이 책으로 써진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하나의 인생이 왔다 갑니다!’

‘다들 기다리셨나 봐요. 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밤을 잊은 시간, 소중합니다!

새벽 감성은 덤!’

방명록은 심야서점을 경험한 이들의 인증으로 가득하다. 새벽 2시, 인적 드문 청담동 거리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 한 무리가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 매주 금요일에 북티크 논현점에서 진행되는 ‘심야서점’ 프로그램 때문이다. 서점이 거의 없는 강남에 ‘북 벨트’를 재조성하게 만든 북카페 북티크는 새벽 1시에도 ‘OPEN’이라고 적힌 팻말이 내걸려 있다. ‘언젠간 읽겠지-미뤄둔 책, 함께 읽기’라는 콘셉트의 심야서점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진행되는데, 입장료 1만원을 내고 들어오면 커피와 차 종류가 무료로 나온다. 북토크나 영화 상영이 시작되는 새벽 2시에는 아메리카노 또는 맥주로 리필해준다. 컬러링 북 체험 코너와 함께 작가와의 대화, 심야서점, 북파티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북티크 논현점의 좋은 점은 소설, 시, 문학, 에세이, 외에 그래픽 노블과 만화책 종류도 앉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간의 경우 구입한 뒤 읽을 수 있다(북티크 서교점은 모두 판매용 도서). ‘권점장’s Pick 코너는 ‘점장이 사서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는 스티커와 함께 책꼬리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생각을 생각하게 됨. 아주 유익했음)가 붙어 있다. 도서 구매 시 5% 적립과 함께 음료도 1000원 할인해준다. 북티크 서교점에서는 원하는 독서모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데 이미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북 큐레이터 쏭큐가 안내데스크에 항시 대기 중이다.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 앞에는 ‘영원히 사는 게 아닌데, 이제껏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없네요’라는 책꼬리가 붙어 있다. 논현점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105 지하1층(서교점 :마포구 잔다리로 88) / 심야서점 운영시간 22:00~06:00(서교점 매주 금,토 / 논현점 매주 금) / www.booktiqu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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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오픈하는 책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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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응 나타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긴 이름보다 ‘나타샤’ 혹은 ‘다산카페’로 불리는 이곳은 24시간 운영되는 진정한 심야책방이다. 야외 테이블 좌석들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니 백석의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유리벽에 흰 글씨로 씌여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이곳은 정말 조용하다. 주문대 우측에는 판매용 도서가 있고 중앙의 대형책장에 있는 책은 자리로 가져가서 읽을 수 있다. 개인공간이 필요하거나 노트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블라인드 뒤로 가면 된다. 24시간 영업하지만 주차 공간은 없으므로 다른 곳에 차를 대고 오는 것이 좋다. 다산북스의 모든 책은 10% 할인되며, 매장 안 뒷 테라스에 흡연구역이 있다. 담요와 멀티탭 등이 준비돼 있으며 24시간 운영이라는 지침 상 ‘1인 1주문, 1인 1좌석’ 법칙이 있다.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좌석은 정리하니 주의할 것(주말, 휴일에는 4시간 이용 시 재 주문). 아메리카노 2500원, 크림 생맥주 3500원, 크로크무슈 세트 8900원, 감자(小) 4000원. 음료 한 잔당 스탬프 1회가 적립되며 10개를 모으면 1만2000원 상당의 도서 또는 음료를 증정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긴 이름보다는 ‘다산카페’로 검색하는 것이 좋다.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3길 39(서교동 395-27 2층) / 24시간 운영(06:00~08:00 청소시간)

http://dasanpubcafe.blog.me

▶힌두신과 함께 책맥을…’시바펍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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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발음에 주의하길 바란다. 이곳으로 오는 우편물들은 이 심야 술 책방을 ‘시바펍’으로 표기한다. 인도 힌두신의 이름을 딴 ‘시바펍앤북스(Shiva Pub&Books)’라는 긴 이름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리라. “취기가 올라 종종 책을 사가시는 분들 있습니다(웃음).” 현재 이곳을 운영 중인 정동욱 대표는 사실 예전 이곳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러다 3년 전 가게를 넘겨받아 지난해부터 ‘책’을 도입, ‘술집 겸 책방’으로 만들었다. 시바펍앤북스, 이름이 다소 긴 것 아닌가? 카피라이터 출신인 만큼, ‘100년 동안의 숙취(마르께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에서 따온)’,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죄와 벌주’ 등 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이름 변경이 까다로웠다고. 시바펍앤북스는 후미진 창천교회 뒷골목에 위치해 있지만 대학생들부터 외국인 바이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돌아 이곳을 찾아온다. “고민이 많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소란스러워지고, 책을 보기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 된 것 같아서.” 시바펍을 오래 찾아온 단골들도 소중하고, 혼자 앉아 책을 보는 이들도 모두 소중하다. 정동욱 대표는 단체 손님과 커플로 꽉 찬 바 한편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한 남자를 가리킨다. “2주 전부터인가 매일 이 시간에 혼자 들러서 책을 읽고 가시더라고요.” 찰스 부코스키, 레이먼드 챈들러, 제임스 설터. 판매용 도서와 함께 중고 서적, 개인 소장용이 두루 전시된 책들은 대형 출판사들에게서 정기적으로 납품 받는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주인의 감식안이 더욱 더 반영돼 있다. 서적 구매 시 10%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며 중고 서적도 매입한다. 라오스 맥주 ‘비어라오’나 미얀마 맥주 등 시중에서 잘 볼 수 없는 동남아 맥주도 취급한다. 책을 읽을 만큼 조용한 공간은 아니지만 시바펍의 특유의 에너지는 자꾸만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책을 매개로 떠드는 장소’ 정도로 여겨줬으면 하는 주인과의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42-24(창천동 2-45) B1/ 19:00~ 02:00(일요일 휴무)

facebook.com/shivapub

▶해방촌 문학서점, ‘고요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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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해방촌오거리에 문을 연 문학 중심 서점이다. 해방촌오거리로 향하는 마을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오르면 해방촌 문학서점 고요서사가 나타난다. 출판사 8년차 편집자 출신 주인장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차린 서점이다. 운영자 차경희 씨는 “박인환 시인이 운영한 서점 ‘마리서사’와 좋은 책과 독서가 가져다 주는 내면의 고요를 떠올리며 ‘고요서사’라 이름지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직접 고른 소설, 시, 에세이 외에 함께 읽으면 좋을 인문 사회 예술 책도 많이 비치돼 있는데, 좁은 공간에서 놀랍도록 풍성한 이벤트를 기획해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유혹한다. 한 달에 한 번 주변의 동네 책방인 스토리지북앤필름, 별책부록과 함께 ‘해방촌의 심야책방’을 진행한다. 지난 4월에 진행된 고요서사의 ‘고요한 밤 릴케 읽기’는 릴케의 대작 <두이노 비가>를 다섯 회에 나눠 밤 8시에 모여 읽는 5회차 모임이었다. 단편소설을 읽고 그 인물에 맞는 와인을 소믈리에가 매칭하는 ‘북앤코르크’가 12월에도 열린다.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15길 18-4 102호(용산동2가 20-9) / 14:00~21:00(화요일 휴무) 심야책방(첫 번째 수요일 14:00~24:00) / www.facebook.com/goyobookshop

▶오후 6시부터는 초능력 바(Bar)로 변하는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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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오후까지는 서점으로 유지되다가 저녁부터는 술집이 되고, 다시 낮이 되면 책방으로 변하는 곳. 이런게 바로 초능력 아닐까.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에 다시 서점을 하자’가 모토로 생겨난 이 시집 전문 서점은 시집과 시인의 산문류, 텍스트 위주의 독립출판물을 판매한다. 낮에는 ‘다시서점’으로 운영되다가 저녁에는 ‘초능력’이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바뀐다. 어두운 조명과 시끌시끌한 분위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오후 6시 이후에는 ‘심야책방’이 아닌 ‘Bar’가 된다. 특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훼손 위험성 때문에 밤에는 책을 읽기가 조금 힘들 수 있다. 지하 가게로 내려가는 문 앞에는 ‘책 읽는 손님에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사오니 촬영은 자제해주세요’라는 간판이 서 있다. 지하로 내려가니 마치 폭격으로 뚫린 벽처럼 가운데 벽이 뚫려 있고 그곳을 책이 놓인 테이블이 관통하고 있다. 클럽과 술집 범벅인 이태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다른 서점에서는 잘 구할 수 없는 예쁜 문구 같은 독립출판물과 잡지들 옆에는 시인인 주인의 시집 <시월세집>이 놓여있고, 옆에는 ‘솔직히 이젠 읽을 때도 된 것 같은데’라는 코너명이 붙어 있다. 각종 벽에는 주인이 그렸음직한,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각종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다. 짧은 시처럼 마음에 여백이 필요할 때 혼자 들려 에너지를 수혈받아도 좋은 집이다. 제일기획에서 뒷길로 걸어내려오거나 현대라이브러리에서 뒷길로 올라오면 된다. 서점 중간에 뚫린 벽처럼 다시서점은 다시 당신을 책방으로 데려간다. ‘다시서점’이라는 간판은 없으니 ‘초능력’만 찾아가자.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42길 34(한남동 683-67) 지하 1층 / 다시서점 12:00~18:00 초능력Bar 18:00~02:00 월요일 휴무 / www.facebook.com/dasibookshop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매장사진 북티크, NHN 책문화팀, 교보문고, 다산북스, 고요서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54호 (16.1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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