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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의 수도로 변한 프랑스 소도시

입력 : 
2016-11-13 18:02:26
수정 : 
2016-11-13 2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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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책 전시하고 독자 만나는 책의 축제
"한국 문학에 필요한 건 독자를 기다리는 일"
소설가 김중혁 '2016 브리브 도서전' 참관기
사진설명
프랑스 소도시 브리브라게야르드에서 지난 4일 열린 '2016 브리브 도서전'에서 독자들이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소설가 김중혁]
프랑스 남부의 브리브라게야르드(Brive-la-Gaillarde)는 인구 5만명 정도의 작고 조용한 도시다. 상점이 모여 있는 구시가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1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돌로 된 거리를 걷고 있으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로운 월요일 오후,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고 열려 있는 가게에서도 손님은 흔치 않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금요일(4일)과 토요일, 일요일 3일 동안 브리브는 시끌벅적했다. 식당과 가게에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나는 목요일 밤에 브리브에 도착했고, 금요일부터 2016 브리브 도서전(Foire du Livre de Brive)의 일정이 시작됐다. 브리브 도서전은 전에 알던 도서전과는 달랐다. 출판사 직원들이 자신의 전시장에서 책을 파는 게 흔한 모습인데, 여기는 작가 중심이다. 작가가 자리에 앉아서 독자들을 맞이한다. 어떤 작가는 도서전 내내 자리에 앉아 있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하루에 몇 시간만 앉아 있기도 한다. 책을 설명하는 방식도 제각각, 책을 전시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에 작가 한 명의 원칙은 어김없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여도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프랑스의 차기 대선 후보 주자 중 한 명인 알랭 쥐페(Alain Juppe)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랭 쥐페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길어지자 주변의 작가들이 입을 삐죽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같은 그룹에 있던 작가 한 명은 "내 이름도 알랭입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쪽지를 내붙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아 독자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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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에 찾아온 사람들은 우선 작가와 눈인사를 건넨다. 진열된 책을 들고 표지와 뒤표지를 살핀다. 책을 쓴 작가가 눈앞에 있으니 어색할 것도 같은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책에 대해 물어볼 수 있으니 '마침 잘됐다'는 듯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 책을 출판한 프랑스 출판사(이자 브리브 도서전에 나를 초대해 준) '드크레센조'의 직원이 내 옆에 앉아서 모든 이야기를 통역해주었다. K팝에 빠져서 한국 문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학생도 있었고, 엑소와 나의 공통점은 한국인이라는 것밖에 없지만 그 이유만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한 아이도 있었고(사진을 찍으려면 책을 사야 해요!), 입양한 아이가 한국에서 왔다는 할머니도 있었고, 지난해 브리브 도서전에서 만난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 다시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지난해에는 소설가 김경욱과 최제훈이 도서전을 다녀갔다). 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고, 책을 팔았다. 시차 적응이 되기도 전이어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도서전에는 유명 작가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파트리스 르콩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니엘 페낙,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자인 레일라 슬리마니, 영국 추리소설의 거장 엘리자베스 조지, 인기가 많아서 대체 누군가 싶어 검색해봤더니 래퍼이자 작가로 유명하다는 아브드 알 말릭 등 리스트가 화려했다. 수백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인을 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작가 위주의 도서전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유명 작가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작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에 앉은 작가의 모습이 상품을 팔러 나온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작가의 육체적 피로감이 극에 달할 수 있다. 내 무릎은 지금도 뻐근하다. 우려를 나열해보니 모두 작가에 대한 것뿐이다. 독자들은 손해 볼 일이 없는 도서전이다.

한국의 문학에 가장 필요한 것이 브리브 도서전에 있었다. 우려할 만한 걱정거리가 태산 같더라도 독자에게 한발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일, 불평할 만한 이유가 많더라도 견디며 독자를 기다려보는 일, 내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웃으며 얘기를 나눠보는 일, 그런 일들이 한국 문학에서 더 많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책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3일을 보내서인지, 월요일은 더욱 고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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