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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학적 감성을 품은 화가, 고흐

정여울 기자
입력 : 
2016-09-28 0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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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로 가는 길-18] 고흐가 다른 화가들의 그림만큼이나 많이 보았던 것은 바로 소설이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자주 '화가들에 대한 생각'과 '문학에 대한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고흐의 편지에서 렘브란트, 밀레, 들라크루아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에밀 졸라,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다. 고흐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지식을 키웠고,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감수성을 길렀다. 고흐는 셰익스피어에서 인간 심리의 복잡·미묘함을 배웠고, 찰스 디킨스에게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배웠으며, 에밀 졸라에게서 농부들의 애환을 깨달았다. "우리는 에밀 졸라의 소설 '대지'와 '제르미날'을 읽은 사람들이잖아. 우리가 캔버스 위에 농부를 그린다면 그 소설들이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 그림에 나타날 수 있다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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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자화상을 찍는 사람./사진=이승원
 고흐의 문학적 감수성은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테오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빛을 발했다. 고흐는 화가 베르나르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말 그래. 위스망스의 소설 '살림'에 나오는 멋진 친구 시프리엥의 말이 떠오르는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드러누워 담배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상상 속에서 그려보는 그림이 아닐까. 결코 실제로 그려본 적은 없는, 상상 속의 그림 말이야." 이렇듯 고흐의 가슴속에는 수많은 문학작품들의 주인공이 수많은 화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이 그에게 '나도 과연 그런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압박감을 주었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지만 오직 머릿속에서만은 최고의 작품으로 빛나는 바로 그런 작품을 그리기 위해 고흐는 그야말로 고군분투했다.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못한 날은 안절부절 못할 정도로, 고흐는 엄청난 일중독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엇이든 시작해야 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함,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 앞에서 때로는 무력감을 느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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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
 고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뛰어났던 것처럼,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뛰어났다. 고흐의 그림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 중에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감동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다 묶으면 방대한 '서간체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흐는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의 편지 중에는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감식안이 빛나는 문장들도 많다. "우리 문명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대부분 우울증과 염세주의지.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기에, 내 소원은 한 번이라도 시원하게 온 마음을 다해 껄껄 웃어보는 거였단다." 고흐는 선배 화가들의 그림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 "렘브란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창녀의 두상은 정말 완벽했어. 어쩌면 그렇게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그려냈을까. 게다가 그 아름다움 위에 자기만의 중후한 무게감까지 실어냈잖아. 렘브란트는 진정 위대한 마술가가 아닐까 싶어.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작품은 정말 새로운 도전이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성공해내고 싶단다. 마네도 성공했고, 쿠르베도 끝내 성공했잖아. 에밀 졸라나 알퐁스 도데, 공쿠르 형제, 오노레 드 발자크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묘사한 여성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이해할수록, 나는 훌륭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생겨."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모델의 가시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내적 아름다움을 마치 작가들이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듯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내고 싶어 했다.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은 화가로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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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뢸러 뮐러 박물관의 고흐 기념품들./사진=이승원
문학은 고흐에게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고흐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고, 그 기억을 글로 묘사하는 데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고흐가 편지에 쓴 수많은 인물들과 작품들, 역사적 사실과 당대의 유행 등은 지금도 여러 분야의 학자들에게 그 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테오와 고흐가 파리에서 함께 살았던 기간 동안에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학자들의 탄식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고흐는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 그림은 어떤 색채와 질감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묘사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아를에서 그린 카페의 내부를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붉은 빛깔과 푸른 빛깔에 대한 사람들의 무서운 정열을 묘사하고 싶었어. 그 카페의 내부는 붉은 핏빛과 무거운 노란색이고, 초록빛 당구대가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지. 샛노랗게 빛나는 전등 네 개로부터 주홍색과 푸른빛을 함께 퍼뜨리고 있단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냈을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문학적 비유를 자주 쓰곤 했다. 끔찍한 발작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조차도 테오와 자신의 관계를 '바리케이드 뒤편에서 총을 쏘는 병사의 몸짓'에 비유한다. 고흐와 테오는 서로 사랑했지만 '화가'와 '화상'의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는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전사들처럼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테오에게 끊임없이 '이 소설을 읽어봐, 이 시집을 읽어봐' 하고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렇게 멀리서 따로, 또 같이 읽은 소설을 예로 들어 편지를 쓰면, 두 사람은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아, 그때 그 장면!' 하고 떠올릴 수가 있었다. 누에넨에서 고흐에게 연정을 품었던 마르호트 베헤만의 자살기도를 편지로 알리면서 고흐는 그녀를 '최초의 보바리 부인'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그는 화가들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없이 어떻게 인물화를 그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의 아틀리에에 어떻게 현대 문학 작품이 한 권도 없는 건지, 원."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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