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서도 구하기 힘든 절판작에 눈길

심혜리 기자

불황 속 복고 바람, 화제작 못 내는 맥빠진 문단에 출판사들은…

국내 문학계에 ‘절판 작품’의 복간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엔 복간 서적만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복간 현상은 사회 전반의 1980~1990년대 ‘회고적 경향’과 맞물려 위축된 문단의 작품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풀이된다. 젊은 독자층과 복간서의 만남으로 ‘새로운 고전’이 나올 수 있다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특정 작가나 작품에 대한 쏠림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학과 지성사는 1983년 출간됐던 김정환 시인의 <황색예수>와 1997년 나온 김혜순 교수의 <어느 별의 지옥>, 1997년 펴낸 이윤학 시인의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등을 올해 하반기 복간할 계획이라고 지난 31일 밝혔다. 모두 절판됐던 시집이다.

출판계의 절판 서적 복간 바람이 일면서 독자들이 1980~1990년대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출판계의 절판 서적 복간 바람이 일면서 독자들이 1980~1990년대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선북스도 1980~1990년대 베스트셀러인 칼릴 지브란의 시를 묶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를 지난달 초판본 그대로 복간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며 다시 주목받은 덕이다. 민음사는 아서 코난 도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다룬 논픽션 <셜록 홈즈의 세계>를 최근 복간했고, 문학세계사는 안나 가발다의 어린이책 <35㎏짜리 희망 덩어리>를 다시 펴낼 예정이다.

<b>황색예수</b> 김정환 지음 | 초판 1983년

황색예수 김정환 지음 | 초판 1983년

지난해 하반기에는 소설가 김훈의 절판된 산문집에 실린 글들을 엮은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열림원) 등이 재출간돼 호응을 얻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올해 많은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복간 서적에 뛰어들고 있다”며 “복간서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책들로, 예전 책들을 접해본 적 없는 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수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b>어느 별의 지옥</b> 김혜순 지음 | 초판 1997년

어느 별의 지옥 김혜순 지음 | 초판 1997년

시중에서 다시 접할 수 없는 절판본만을 복간하는 전문 출판사도 등장했다. 지난해 말 불교연구자 박재현씨의 철학에세이 <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를 복간한 1인 출판사 ‘최측의 농간’은 이번달 고형렬 시인의 장편 산문집 <은빛 물고기>를 복간한다. 실제 저자가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연어의 생태를 10여년 동안 연구·추적하며 쓴 산문들이다. 신동혁 ‘최측의 농간’ 대표는 “탁월한 작품들이지만 절판돼 아쉬움이 컸던 책들을 요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며 “현재 200여권을 리스트업 해놓았다”고 말했다.

<b>보여줄 수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b> 칼릴 지브란 지음 | 초판 1988년

보여줄 수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칼릴 지브란 지음 | 초판 1988년

출판사들의 복간 바람에는 출판계의 불황과 문학의 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현재 한국 문학 전체가 독자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라며 “그동안 출판계가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두 명의 작가에만 집중해 ‘스타 마케팅’을 펼치면서 독자들의 쏠림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독자층을 만들지 못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b>은빛 물고기</b> 고형렬 지음 | 초판 1999년

은빛 물고기 고형렬 지음 | 초판 1999년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단행본 판매부수가 크게 떨어져 현재는 95%가량이 ‘재판’을 찍지 못하고 있다”며 “출판사로서는 초판 2000부라도 확실하게 보장되는 복간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출판사 주간은 “매출 감소로 새로운 저자를 발굴해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전의 좋은 책들을 찾아 다시 내는 것이 선인세나 로열티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b>35kg짜리 희망 덩어리</b>  안나 가발다 지음 |초판 2004년

35kg짜리 희망 덩어리 안나 가발다 지음 |초판 2004년

절판서의 복간 현상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출판계에선 출간 당시 단순 소비에 그친 작품들이 다시 ‘시간을 견뎌내’ 우리 시대 새 고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한다. 반면 복간된 작품들이 실제 ‘새로운 문학’이 아니라는 점에서 ‘착시효과’나 또 다른 쏠림을 불러온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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