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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모두 회사원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기에 흙을 안 만지면서 살지도 않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숲하고 동떨어진 채 살지도 않아요. 그리고,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모두 흙을 만지는 일꾼으로 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흙이나 풀이나 나무를 잘 알지도 않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앞으로도 시골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하루 빨리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가운데 도시를 떠나겠노라 하고 생각하기는 몹시 어려울 수 있어요. 아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너희는 앞으로 도시를 떠나렴.' 하고 가르치는 어른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할 만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한테 '자, 너희는 시골을 배우고 숲을 노래하면서 도시를 떠나렴.' 하고 가르치려면, 이렇게 말할 어른들 스스로 먼저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아이를 낳았을 테니까요.

겉그림
 겉그림
ⓒ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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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자급적인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삶 … 이는 쌀과 채소 등 주요 농작물을 직접 길러 안전한 식재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영업에 종사함으로써 일정한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균형 잡힌 삶을 말한다. (19쪽)

데루오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꼬박 한 해를 정성을 쏟아 가며 벼와 채소를 기르는 농사일, 그리고 유화를 그리는 과정은 서로 닮았어요. 둘 다 단숨에 완성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도시의 좁은 공간에서 분주하게 그리면 마치 공업 제품 같은 그림이 되고 말죠." (36쪽)

시오미 나오키님이 쓴 <반농반X의 삶>(더숲,2015)을 읽습니다. 글을 쓴 시오미 나오키 님은 '반농'하고 '반X'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반농'하고 '반X'란 삶을 둘로 나누어서 바라본다는 뜻이요, '반농'은 우리 삶에서 반은 농사를 짓는 삶으로 가꾸고, 다른 반이 될 '반X'는 저마다 가슴에 품은 꿈대로 삶을 짓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살되 오로지 시골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시골일은 하루 가운데 반쯤으로 삼고, 다른 반은 '꿈을 찾자'고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달리 보면 도시에서도 똑같이 말할 만합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반만 '도시 일자리'를 붙잡고, 나머지 반은 '꿈을 찾자'고 할 수 있어요. 또는, 도시에서 붙잡은 일자리에서 '꿈을 찾는다'면, 다른 반으로는 시골에서 손수 먹을거리를 지어서 누리는 살림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전원에서 반농 생활을 하려면 '생활 수입은 적게, 마음의 수입은 넉넉하게'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우리 집은 큰 길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우리 가족은 쇼핑을 자주 가지 않는다. 쇼핑 횟수가 줄어들면 지출액과 쓰레기 발생량도 줄어든다. (50∼51쪽)

딸은 TV 시청보다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바닥에 누워 그림책을 읽는다. (57쪽)

오늘날 학교 얼거리를 돌아보면 모두 '도시 교육'이라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똑같습니다. 서울이나 해남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써요. 부산이나 통영이나 모두 똑같은 시험문제를 풉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도시에 있는 회사나 공공기관이나 무대'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돈을 벌도록 북돋우기만 합니다. 흙을 만지는 일을 가르치는 학교 얼거리는 아예 없습니다. 뜻있는 교사 몇몇 사람이 학교 귀퉁이에 텃밭을 마련하기는 하지만, '밭일'이나 '논일'은 어느 학교에서도 교과 과정으로 안 삼습니다. 더군다나 '농업고등학교'도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농업중학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려우며 '농업초등학교'란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숲유치원은 있으나, 숲중학교라든지 숲고등학교나 숲대학교는 없어요.

요즘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쓸쓸한 논이 많다. 독한 농약을 쓰다 보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에 가 본 사람은 알 테지만, 그런 숲은 그저 나무가 울창할 뿐 생동감이 없다. (77쪽)

옛날 시골에서는 어린아이도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자신이 가족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고, 가족애는 그렇게 자라났다. (88쪽)

도시에서는 어지러운 광고판이 어디에나 많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광고판이 아예 없으니, 논둑길만 걸어도 느낌이 사뭇 다르며 즐겁습니다.
 도시에서는 어지러운 광고판이 어디에나 많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광고판이 아예 없으니, 논둑길만 걸어도 느낌이 사뭇 다르며 즐겁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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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아름답게 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도시만 떠나면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도시만 떠나면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시골로 가기만 해서는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시골로 가서도 땅을 넓게 장만해서 큰 기계를 부리고 비닐하고 농약하고 비료를 듬뿍 써서 '농업(농사)'을 해야 한다면, 도시하고 똑같지요. 흙을 파서 돈을 잘 벌어야 '시골살이(귀촌·귀농)'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는 살림으로 나아갈 때에 시골살이가 비로소 즐겁습니다. 돈을 들여서 땅이랑 기계를 장만하고 시설을 갖추어서, 돈을 더 벌어들이려고 하는 농업(산업 가운데 하나)이 된다면, 애써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 뜻은 흐려지고 맙니다.

관광이란, 한자를 풀어 보면 '빛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빛은 어쩌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의 친절함 또는 따스함이 아닐까? (113쪽)

월급 생활자라면 한 주에 3∼4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정과 지역사회 활동에 할애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족하는 생활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입은 줄어들고 승진도 늦어지겠지만 생활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136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저마다 가슴에 꿈을 품어야 합니다. '직업 계획'이 아닌 꿈을 품어야지요. 어떤 삶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품을 노릇입니다.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펼칠 노릇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겠노라 하는 꿈으로 나아갈 노릇이에요.

나는 아이들을 오롯이 돌보면서 이 대목을 늘 되새깁니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넣는다면,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까 '틈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아이를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넣으면, 아이 삶에서 오직 한 번만 있는 '한 살'이나 '두 살'이나 '세 살'이나 '네 살'이나 '다섯 살'이 어떠한 나날인가는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집에서 놀리면서 이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놀이를 누리면서 어떤 하루를 짓는가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껴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집에서 돌보고 가르치고 품으면서 '나 스스로 내가 이 아이만 하던 어린 날에 받은 사랑'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에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어 받기에만 익숙해진 탓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다. (164쪽)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면 된다는 것이다. 풀을 스스로 벨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먹을 만큼의 쌀이 생산된다. 그것보다 크면 노동력이 모자라서 무리를 하게 되는데. (205쪽)

시골로 가려고 꿈을 품는 분들이 '넓거나 큰 집'이 아니라, 마당이나 텃밭을 곱게 품으면서 오순도순 살뜰히 가꾸는 시골살이를 생각한다면,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기쁜 삶을 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시골로 가려고 꿈을 품는 분들이 '넓거나 큰 집'이 아니라, 마당이나 텃밭을 곱게 품으면서 오순도순 살뜰히 가꾸는 시골살이를 생각한다면,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기쁜 삶을 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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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농반X의 삶>이라는 책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아주 쉽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시골에서 살 때에 길을 잘 열 수 있으니 시골로 가자고 말하지요. 다만, 전원주택을 짓는 시골이 아니라, '내 삶을 가꾸는 살림살이'가 될 시골을 찾자고 말해요. '대규모 농업'으로 돈을 벌 시골이 아닌, 손수 먹을 밥을 땅에서 손수 지어서 얻는 홀가분하면서 재미난 시골이 되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살필 수 있다면, 도시에서 살 적에도 '모든 날을 돈 버는 일에 가두지' 말고, 이레 가운데 나흘을 돈을 번다면 다른 사흘은 새로운 삶과 꿈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에 쓸 수 있습니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더라도 나흘만 맡기고 사흘은 오롯이 아이하고 어울릴 수 있어요.

스스로 삶을 찾을 적에 스스로 사랑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려 할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반농반X의 삶>(시오미 나오키 글 / 노경아 옮김 / 더숲 펴냄 / 2015.11.24. / 14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반농반X의 삶 -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다

시오미 나오키 지음, 노경아 옮김, 더숲(2015)


태그:#반농반X의 삶, #시오미 나오키, #시골살이, #삶짓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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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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