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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연구소가 발간한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볼수록 매력있는 인문교양서다. 이 책은 인류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으며, 오늘의 현실을 가장 많이 규정하고 있는 근현대 4백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개괄한다.

4백년을 한 권에 담았다고 하니 분량이 만만치 않겠구나 여기겠지만, 텍스트의 양은 많지 않다. 사진과 그림 등 시각 자료로 빼곡히 채워넣었고 여기에 핵심적인 설명만 간단히 붙여놓았다. 그러니까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백년을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로 만들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주요 사건들만 뽑아서 나열하거나, 맥락없이 요점 정리만 해놓은 수준은 아니다. 책은 이전 문명과의 단절과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가져온 과학혁명, 사상혁명, 정치혁명, 경제혁명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정리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계> 표지
 <우리가 사는 세계> 표지
ⓒ 천년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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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키워드는 '질문'이다. 역사는 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었다. 새로운 문명은 낡은 문명의 무덤위에서 태어나지만, 역사가 발전할수록 새로운 문명도 시대와 조우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 문명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통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슴에 '질문'을 품어야 한다.

'인류 문명은 인간 자신이 발명해 온 역사의 축적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 젊은이라면 자신이 어떠한 발명의 결과인지 반드시 사고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인간이 처한 위기와 문제를 돌파하고 해결해 온 결과의 축적이라면, 그 문제의 핵심과 위기 돌파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아왔고, 현재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해결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었다는 지식을 습득한다고 해서 문제 해결의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닦아야 할 핵심적 자질은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하는 능력이다. 인간에 대한 생생한 이해, 세계에 대한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관점의 이해 없이는 이러한 문제 설정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머리말 중에서)

책은 코페르니쿠스를 시발점으로 하는 '과학혁명'을 맨 첫 장에 놓았다. 중세와의 단절, 근대로의 전환이 곧 '과학혁명'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의미다. 이 시기의 과학적 발견은 인류가 신 중심의 사고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세계관의 격변을 불러왔다.

과학 혁명이 만들어 낸 세계관의 '코페르니쿠스 적 전환'은 근대 사상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불러 온 과학혁명은 네 가지 의미의 '혁명'을 포함한다. 책은 이 네 가지 혁명을 "인간이 세계를 보고 인식하는 방식의 혁명,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의 혁명,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의 혁명, 정신과 사고방식의 혁명"(66쪽)이라고 요약한다.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상식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돈다'는 것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런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갈릴레이가 살았던 시대의 상식은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나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이런 상식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상식이나 경험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은 상식과 경험의 구속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식이란 18세기까지 습득한 편견의 조합"이라 말했습니다. (30쪽)

과학적 사고, 과학적 탐구방법, 과학정신은 합리적, 비판적 사고의 토대다. 이는 사상혁명과 정치혁명, 경제혁명을 추동했다. 인간은 어둠의 시대, 무지 몽매로부터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다. 18세기 계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이성'에 근거하여 세계를 개조하고자 했다. 자유, 평등, 인권, 비판정신, 관용, 진보 등은 계몽사상의 키워드다. 계몽사상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발명과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 등 '정치혁명'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치적 토대는 민주주의다. 책은 "성숙한 '시민'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시민의 가장 중요한 책무입니다"라며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모여 살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늘 생각하고 그 물음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164쪽)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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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혁명은 근대 세계를 탄생시켰다. .
ⓒ 천년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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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명은 중세의 극복이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문제점들을 만들어냈다. 근대 문명이 내세운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시장의 논리와 기득권의 이익 앞에서 무기력하기 일쑤였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금수저 논란은 '모든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을 가진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가볍게 묵살한다.

자유 시장 원리를 천명했던 애덤 스미스가 살아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시장 만능 사회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시장의 탐욕은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고, 부의 독점에 반대했다. 대중 집회에 모인 시민들을 '테러범' 취급하고, 노동자 대표가 노동법 개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1급 수배자가 되어 끌려가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세상. 오늘날 우리의 삶에 민주주의는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처럼 계몽은 아직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근대 계몽시대의 가치들은 현재에서 여전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근대를 사유한다는 것은 그 시대가 던졌던 물음에 오늘의 세계를 비춰 지혜를 구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거꾸로 가는 세상에 울분과 의문을 품은 이들에게 이 책은 참 괜찮은 '내비게이터'다. 

1784년 칸트는 "우리는 지금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미성숙으로부터의 탈출은 끝났을까요?
아직도 우리는 이성의 세계 너머 무지와 몽매, 폭력, 불관용과 미성숙이 지배하는
어둡고 황폐한 사막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08쪽)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사는 세계>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연구소 지음 / 천년의상상 펴냄 / 2015.11. / 1만9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 - 인문적 인간이 만드는 문명의 지도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연구소 엮음, 천년의상상(2015)


태그:#근대 문명, #근대 사상, #민주주의, #과학혁명, #계몽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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