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은문학관 건립 논란에 부쳐

최준영 |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영화 <노팅 힐>로 유명한 포르토벨로 로드의 재래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 색다른 볼거리가 있었다. 단아한 주택단지의 한중간에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조지 오웰(1903~1950)이 살았던 집’이라는 원형 간판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사진으로 담아왔고 지금껏 그 사진은 내 블로그의 대문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딴엔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영국여행쯤이야 대수일까만 조지 오웰이 살았던 집을 둘러보았다는 사실만큼은 일생을 두고 기억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죽었지만 그의 탁월한 작품과 발자취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런던의 허름한 주택가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기고]고은문학관 건립 논란에 부쳐

최근 수원시에서 시인 고은의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지역 문인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수원시에서 시인 고은에게 공을 들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인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문단의 원로이자 우리 문화계의 큰 별이기 때문이다. 마침 인문학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가 시인의 올곧은 인문정신과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로 한 것일 테다. 사실, 굳이 수원시가 아니더라도 전국의 지자체 어디서든 시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될 수밖에 없다. 우선은 지역 문인협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성명서로 발표된 그들의 의견을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지역 연고도 없는 ‘굴러온 돌’인 고은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고, 그럴 바엔 지역 문인들을 더 챙기라는 주문이다. 얼핏, 일리 있는 의견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그 의견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우선, 시인 고은을 두고 ‘굴러온 돌’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대, 고은은 출신이 군산이라 해서 ‘군산의 시인’도 아니요, 안성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안성의 시인’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작 3년 동안 수원에 살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한다 한들 오롯이 ‘수원의 시인’이 될 리도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고은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요, 우리 모두의 시인이다. 수원시에서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하는 의미는 ‘대한민국의 시인’ 고은을 수원의 시인으로 전유하려는 것이 아닐 테다. 그런데도 후배, 동료 문인들이 원로 시인을 향해 ‘굴러온 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모습은 얄궂다 못해 심각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둘째, 특정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의 타당성 여부다. 그런 곳은 이미 여러 곳이 있다. 강원도 화천에는 ‘이외수문학관’이 있고, 경기도 이천에는 이문열의 ‘부악문원’이 있다. 공통점은 두 곳 모두 작가의 탄생지나 주된 활동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전남 벌교의 ‘조정래문학관’ 역시 작가의 고향에 건립된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작가 박경리의 문학관은 강원도 원주시에도 있고, 경남 통영시에도 있다. 각각 토지문학관과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은 달리하지만 작가 박경리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뜻은 하나다.

셋째, 문학의 지역성, 지역문학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지역문학이란 의미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표현이다. 수원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이라고 해서 수원의 시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시가 수원시민들에게만 읽힌다면 모를까 훌륭한 시인이라면, 그는 이미 수원의 시인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시인이 될 것이다.

문득,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은 지금 수원에 살고 있다. 몸만 온 것이 아니라 그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그의 일생이 온 것이다. 반기고 환영할 일이며, 특히 동료 문인들로서는 자축할 일이 아닐까.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